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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Sep 18. 2022

진상도 손님이다.

마음의 평화를 불러오는 마법의 한 마디

 얼마 전, 감사하게도 진도군청 홍보팀을 통해 촬영을 하게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적"에 대한 인터뷰 중 내가 생각해도 나 참 성장했다 싶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농부경력의 8년 중 가장 행복했던 것도, 가장 힘들었던 것도 돈보다는 사람이었다. 그저 땅을 일궈 농작물을 수확만 한다면 '농사꾼'에 그치겠지만 우리는 농장을 '경영'하며 직접 판매까지 하는'서비스' 종사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고객은 나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만든다.



 스물 여섯. 그때는 쪽파도 팔았다. 직접 재배한 쪽파를 주문받으면 엄마, 아빠, 동네 할머니들 할 것 없이 밭에서 수확을 해서 한겹한겹 껍질도 벗겨 팔았다. 뿌리에 묻은 흙도 털어내다보면 겨우 1kg를 완성하는데 이십 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다. 금요일 오후 두 시쯤 전화가 왔다. 주말에 꼭 쪽파김치를 담궈야하는데 입금은 퇴근 후에나 해드릴 수 있어요. 죄송해요, 저희는 입금 순서대로 발송해드리고 있어요. 아니요, 입금은 꼭 해드릴테니 쪽파먼저 보내주세요.


 꽤 차갑고 단호한 여자분의 목소리에 그래, 설마하며 그 소중한 쪽파들을 보내드렸다. 68,000원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녁 7시가 넘었지만 입금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음 날 연락을 드렸다. 시어머님이 아파서 병원이예요, 퇴원하면 입금해드릴게요. 그리고 일주일, 그 다음 일주일이 되어도 이래서요, 저래서요 하며 결국 입금은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당시 함께 마케팅 수업을 듣던 언니오빠들은 나보다 더 크게 분노를 하며 당장 경찰에 신고를 하라고 했다. 에이, 십만원도 되지 않는걸요. 수업료라고 생각하려고요. 아니야,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런 사람들은 다른데 가서도 그러는 사람들이야. 나는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 더 이상 그 분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68,000원에 선입금의 중요함을 배우고 1년 정도가 흘렀을 때. 운이 좋게도 <여섯시내고향>에 두 번째 출연을 하게 되었다. 그 때는 대파였다. 한 달 내내 핸드폰이 과로해서 혼자 꺼질 정도로 전화가 멈추지 않았다. 인터넷을 다룰 줄 아는,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은 문자나 카카오톡 메세지로 혹은 직접 우리 쇼핑몰을 통해 대파를 주문해주셨다. 그것이 어려운,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직접 전화를 주실 수 밖에 없었다.


 어떤 할머니가 정말 어렵게 어렵게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방송국에 전화해서, 진도군청에 전화해서, 여기저기를 거쳐서) 겨우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감사한 마음에 죄송한 마음까지 섞였다. 할머니는 전화로 본인의 이름과 주소를 말씀해주시고, 다음 날 또 어렵게 어렵게 직접 은행창구에 가서 입금을 해주셨다.


 그 뒤로 할머니는 두 번인가 대파를 더 주문해주셨다. 세 번째 주문때는 입금을 하시기 전에 대파를 먼저 보내드렸다. 늘 저희 농장은 입금순서대로 발송해드립니다, 입금 후에는 입금하셨다고 꼭 한 말씀만 해주세요 하던 내가 할머니, 이번에는 대파를 먼저 보내드렸으니 입금은 내일 해주셔도 되어요 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다음 날 전화를 하셔서 입금했다는 말씀 대신 대파를 더 보내달라고, 지난 번 대파값과 함께 입금을 하겠다고 하셨다. 할머니, 지난 번 대파는 먼저 보내드렸지만 저희는 원래 입금해주신 분들께 발송해드리고 있어요. 아는데 내가 지금 병원이라서 일단 먼저 대파를 더 보내줘요.


 지금 생각하면 내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그 뒤로도 '입금 없이' 세 번 정도 대파를 더 보내드렸다. 느낌이 싸해진 나는 또 다시 대파를 더 보내달라는 그녀의 요구에 정색을 하며 지금까지 보내드린 대파값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병원이라며, 입원을 했다며, 자기가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아냐며 울먹거리셨다. 그 할머니와 몇 번의 입씨름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녀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의 수업료는 또 다시 쌓였다.



  우리 농장은 여름에는 고춧가루를, 겨울에는 절임배추를 '맞춤제작' 해드리고 있다. 고춧가루는 고추의 맵기, 굵기, 씨를 뺀 정도, 색깔 등으로. 절임배추는 배추의 크기, 절임정도, 푸른잎의 양 등으로. 그러다보니 처음 우리 농장에 발을 딛는 분들과는 깊은 상담을 거쳐 당신만의 고춧가루나 절임배추를 맞춰드리고 있다. 그 날의 문제도 이러한 맞춤제작에서 생겼다.


 카페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따뜻한 페퍼민트티를 골랐다. 고기를 먹고 나서 약간 느끼해진 속을 상쾌하게 달래주고 싶었다. 한창 나른하게 기분이 좋아져있는데 따르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넘어의 그녀는 꽤나 깐깐한 분이었다. 배추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종자는 무엇을 심었으며 소금은 어떤 것을 쓰는지. 오히려 이렇게 똑똑한 분들은 한 번 마음의 문을 열면 평생 단골이 될 수 있기에 우리 배추가 얼마나 좋은지 열심히 설명을 드렸다. 그녀는 '반드시 70%만 절여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당시 4년차 농부였던 나의 촉이 말했다. 이 분은 그냥 똑똑한 소비자가 아니라 어떤 것을 내어드려도 만족하지 못할 분이다. 그래서 조심스레 혹시 내가 당신의 '주관적인' 요청을 맞춰드리지 못할 수 있으니 다른 곳에서 주문하시는 것이 어떻겠냐 말씀드렸다. 그래도 그 분은 꼭 우리 농장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넘는 통화를 두 번에 걸쳐 했다. 맞은편 친구는 얼마나 뻘쭘했을까.


 그리고 한 달 뒤 예상했던대로, 아니 그 보다 더 격하게 그녀는 불만을 표시했다. 아니, 내가 70%만 절이랬지 왜 80%를 절여서보냈어요!




 요즘들어 김장하는 집이 많이 없어졌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하는 곳은 한다. 김장을 하려면 배추도 절여야하고, 양념도 준비해야 하고, 여럿이 하려면 시간도 맞춰 기다린다. 양념도 다 준비해놨는데, 절임배추가 오지 않는다. 농장에서는 보냈다고 하는데 택배가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다리고 어딘가에 화풀이를 해야 하는데 농장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2년 전부터는 '김장하시기 하루 전 날' 받으시는 것으로 주문해달라 부탁, 아니 사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배추를 받고 싶어 꼭 김장하는 날 도착하는 것으로 주문하셨다가 배추가 원하는 시간에 오지 않으면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신다.


 그래도 이렇게 '이유 있는' 불만은 이해를 한다.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크다. 그런데 정말 진상도 있다. 한 때 절임배추 농장들만 노리는 '전문꾼'들도 있었다. 일단 배추를 받으면 무조건 트집을 잡는다. 배추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보내달라고 하면 횡설수설(배추를 다시 보내주세요하면 힘들게 어떻게 다시 포장해서 보내냐, 이미 김장을 했다 등등)하며 돈을 요구한다.


 절임배추를 하면 몸이 축나는 것보다 마음이 박살날 때가 많다. 우리 엄마는 나보다 10년도 더 먼저 이 일을 시작하셨는데, 막무가내로 환불해달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택배가 원하는 시간에 오지 않았으니 양념값에 사람들 인건비까지 물어내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 욕을 하거나 경찰에 고소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빠는 무조건 절임배추든 고춧가루든 뭐든지 양을 늘려야한다고 하지만 나와 엄마는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는 분들과만 '협력'을 하고 싶다. 몇 해 전에는 엄마에게 돈을 내는 사람이 갑이라 내가 갑인데 어디서 말대꾸를 하냐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는 분이 있어 나의 이성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갔다. 엄마가 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그 사람의 집주소로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손님과의 관계를 돈의 주체로 갑을이 정해지는 사이가 아닌, 정당하게 가치를 나누는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내가 계약서 상 '갑'이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두 불러앉혀놓고 정신교육부터 하고 싶다.



 이번 가을은 눈이 튀어나오게 바빴다. 고추가 끝나기도 전에 배추가 시작되었다. 추석은 왜 이리 빠른지 중간중간 밤을 새가며 기름도 짰다. 그래도 일할 수 있음에, 찾아주시는 누군가가 있음에 행복했다.


 우리 기름선물세트는 참 예쁘다. 착유하는데도 오래 걸리지만 포장하는데도 손이 참 많이 간다. 얼마 전부터는 유독 젊은 미혼여성분들이 남자친구 집으로, 상견례 답례품으로 찾아주신다. 누군가의 의미있는 순간을 함께 하는 것 같아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런 경우 대부분 보내시는 분도, 받으시는 분도 좋아해주신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선물세트를 '단순반품'하신 경우가 생겼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한 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부부셨고, 또 한 분은 젊은 남자분이셨다. 두 분 모두 받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기름이 너무 작다, 그에 비해 너무 비싼 것 아니냐. 그래서 두 말 없이 환불해드렸다.


 얼마 전의 나였다면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집중해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두 분에게, 특히 나도 시골에서 기름짜봐서 아는데 아가씨 너무 폭리를 취하는 거 아니냐며 흥분하시던 할머니께 차분차분히 말씀을 드렸다. 요즘은 국산깨를 구하는 것이 참 어려워졌는데, 저희 농장에서는 국산참깨와 국산들깨만 사용해서 저온에서 오랜 시간 볶고 또 저온에서 내리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착유량도 적어 한 병을 만드는데 깨 1키로가 온전히 들어가요. 깨도 비싸고 세금도 내고 수수료도 빠지고 하다보니 실제로 저희에게는 이 정도밖에 남지는 않아요.


 그래도 가치를 알아주시고 한 번 찾아주신 분들은 계속 찾아주고 계셔서 자부심을 가지고 기름을 내리고 있어요. 물론 이건 저의 입장이예요. 우리 고객님께서 귀한 선물로 믿고 맡겨주셨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시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물론 좋은 기름이지만 직접 드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을 드리는 입장이기 때문에 실망하셨을수도 있어요. 믿고 맡겨주셨는데 만족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렇게 차분히 진심을 다해 죄송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나를 선택해주셨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하니, 흥분하시던 분들도 오히려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맞아요, 내가 직접 먹는 것이면 모르겠는데 선물하다보니 그랬어요. 다음에 꼭 다시 주문할게요.


 그 분이 다시 나를 찾으실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직접 전화를 드려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 분에게 나는 그저 평생 '폭리를 취하는 아가씨'로 남았을 것이다. 그 분들은 어찌 되었든 처음에 나를 (순수한 의도로) 믿고 선택해주신 분들이 아닌가. 그 점에 집중하면 한 없이 고마운 사람들이다.




 카페를 하는 친구가 물었다. 넌 어떻게 그렇게 평온할 수 있어? 누군가가 밉지 않아?


 나도 사람인지라, 그것도 아주 부족한 사람인지라 시기질투도 많고 작은 것에 예민하게 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입장을 바꿔보면 "그럴수도 있지" 싶어진다. 모든 순간에 "그럴수도 있지" 하다보면 거짓말처럼 분노도, 불안한 감정도 모두 누그러진다. 특히 고객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실수로 다른 것을 주문하셔놓고 왜 이딴 것을 보냈냐고 화를 내시거나, 이사 전 주소를 말씀해주시지 않아 택배기사님까지 곤란하게 만드시거나, 아무 연락없이 입금만 해놓고 왜 보내주지 않냐고 하시거나, 밭에서 달려와 겨우 택배를 싸놓고 기사님이 떠나신지 30분만에 '그냥' 취소하시거나 등등. 차마 다 옮기지 못하는 8년 간의 나의 고객님들덕분에 참 많은 시간 허탈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분 중 두세명을 제외한 나머지 아흡일고여덟분들 덕분에 오늘도 힘을 낸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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