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구입한 과일·채소·육류 등 신선식품이 상했을 경우 환불 과정에서 소비자가 폐기 처리를 떠맡는 방식을 두고 불만이 나온다. 관련 규정이 미비해 일부 업체에서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제품 폐기를 요구하더라도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다는 주장이다.
"택배 비용만 1만원"…업계가 말하는 '소비자가 직접 버려야 하는 이유'
18일 쿠팡·롯데온·SSG닷컴 등 자체적으로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과 오픈마켓에서 물품을 판매하는 업체 10여곳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 물품 하자로 인한 폐기 시 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G마켓에서 참외를 판매하는 한 청과업체는 상한 과일의 경우 직접 과일을 버린 후 환불 절차를 밟도록 했다.
업체들은 상한 식품을 소비자가 폐기하도록 하는 이유로 비용을 꼽았다. 대구의 한 청과업체 관계자는 "상한 과일을 받아 봤자 다시 재판매할 수도 없고 소비자가 직접 폐기한 뒤 다른 과일을 보내거나 환불하는 것이 효율적이다"며 "과일이 오갈 때 택배 비용으로 많게는 1만원까지도 필요한데 다시 주고받는 것은 손해가 크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같은 방식이 소비자에게 폐기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피가 큰 육류나 과일의 경우 폐기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다 소비자가 상한 식품을 처리하는 노동력·불쾌감이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한 누리꾼은 "감자탕을 구매했는데 4일이 넘도록 안 와 문의해 보니 '택배사 문제로 오배송돼 환불처리하겠으니 제품이 오면 폐기해달라'고 하더라"며 "상한 감자탕이면 뼈도 다 빼고 종량제 봉투를 따로 구매해 버려야 하는데 4인분이나 되는 상한 음식을 소비자가 폐기하는 것이 맞느냐"는 글을 올렸다.
한 누리꾼은 "상한 바나나가 와 고객센터에 문의하니 '직접 폐기하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묻더라"며 "과일이 상해 냄새도 많이 나는데 직접 버릴 생각을 하면 막막하다"고 했다.
"전자상거래법에 신선식품 관련 규정은 없다…소비자가 폐기 비용 떠안아"
전문가들은 전자상거래법에 관련 규정이 없어 일정 부분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전자상거래법에는 물품이 계약과 다르게 이행되면 소비자가 청약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 비용을 통신판매업자가 부담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신선식품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폐기의 의무를 공급자가 진다는 규정이 없어 소비자가 부당하게 비용을 떠안고 있다는 측면이 있다"며 "신선식품의 양이 많거나 금액이 커 처리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상한 정도가 심해 처리가 어려운 경우는 판매업자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도 "사업자와 소비자간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폐기 비용을 두고 분쟁의 여지가 있다"며 "원칙적으로 청약철회권을 행사했을 때 사업자가 대금을 환급하고 물품 반환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사업자가 낼 수 없다고 하면 규정이 없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업계는 상한 식품의 회수에 많은 비용이 드는데다 모든 업체가 폐기 비용을 부담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판매한 물품을 환불·교환할 경우 드는 비용까지는 판매자가 부담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폐기 비용이 소액이고 물품이 상하지 않았는데도 환불을 요구하는 등 악용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 전자상거래 사이트 관계자는 "만일 고객이 폐기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없다고 고객센터에 말하면 수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면서도 "사이트 내에서 물품을 판매하는 업체에게 '폐기할 경우에도 비용을 판매자가 부담해달라'고 말할 경우 '갑질'이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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