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 vs LG생활건강, 북미시장-디지털로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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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5.02. 오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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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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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 2위 화장품 업체인 LG생활건강(이하 LG생건)과 아모레퍼시픽그룹(이하 아모레)이 위드코로나 일상회복을 앞둔 올해 다시 한 번 1위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국내 화장품 업계 양대 산맥인 두 회사 중 아모레는 수십 년간 업계 1위였다. 하지만 지난 2020년 LG생건은 화장품 부문에서 4조458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아모레는 3조9042억원으로 역전당했다. 지난해에는 다시 아모레 화장품 사업 부문 매출이 LG생건을 앞섰다. 올해는 위드코로나 일상 회복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뷰티 업계 왕좌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두 회사의 화장품 부문 1위 경쟁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양사 간 브랜드는 물론 매출에서 격차가 컸기 때문. 중국의 한한령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2016년 화장품이 주력인 아모레의 연 매출은 6조6975억원이었다. 반면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매출은 3조1500억원가량이었다. 절반 수준이었던 셈이다. 아모레는 그러나 2017년 중국의 한한령을 계기로 매출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반면, LG생건은 최고급브랜드 ‘후’를 중심으로 되려 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화장품 업계의 관계자는 “아모레의 ‘설화수’ 브랜드가 조금 식상해진 틈을 ‘후’가 잘 파고든 셈”이라며 “특히 차석용 LG생건 부회장의 적극적인 인수합병이 매출 역전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의 ‘후 천율단 태후세트’.


▶LG생건의 힘, 차석용 매직?

LG생건이 큰 폭의 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차석용 부회장이 있다. 2005년 1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부임한 차석용 부회장은 이후 수십여 개의 화장품과 생활용품, 음료 등을 사들였다. 그중 화장품 회사는 더페이스샵(2010년·4667억원), 바이올렛드림(2012년·550억원), 긴자스테파니(2012년·1757억원), 에버라이프(2013년·3039억원), 프루츠앤패션(2013년·172억원), CNP코스메틱스(2015년·742억원), 제니스(2015년·100억원), 리치(2016년·비공개), 태극제약(2017년·인수금 439억원, 출자금 851억원), 에이본재팬(2018년·1005억원), 에이본 광저우공장(2019년·793억원), 피지오겔의 아시아북미 사업권(2020년·1923억원) 등 10여 개에 이른다.

공격적인 인수합병 이후 브랜드를 성장시켜 한한령, 메르스, 코로나 등 외부 충격에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실제 LG생건은 2017년 아모레가 사드 후폭풍으로 휘청거리던 틈을 타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후’는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2016년 매출 1조원에 이어 2018년 2조원을 돌파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화장품이 됐다.

지난해 화장품 사업 실적을 보면 화장품 매출은 4조4414억원, 영업이익은 6.5% 증가한 8761억원을 기록했다. 대표 화장품 브랜드 ‘후’의 매출은 12% 증가했고 ‘오휘’와 ‘CNP’도 8% 이상 늘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전 세계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장기화로 위축된 시장 상황에도 럭셔리 화장품의 견고한 브랜드력을 기반으로 양호한 실적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사업포트폴리오 역시 강점이다. LG생건은 지난해 화장품 사업이 상대적으로 부진했지만 생활용품(HDB) 사업과 음료 사업이 실적 개선을 주도했다. HDB 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9.9% 증가한 2조582억원이었다. ‘닥터그루트’ ‘히말라야 핑크솔트’ ‘피지오겔’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성장에 힘을 보탰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절치부심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1위 재탈환

지난해 화장품 업계 최대의 관심사는 2020년 1위를 내준 아모레가 왕좌를 재탈환할 것인가였다. 결과는 ‘아모레의 귀환’이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그룹의 화장품 사업 매출은 4조9237억원으로 LG생활건강(4조4414억원)을 앞질렀다. 데일리뷰티(보디·헤어 부문)를 더한 전체 화장품 사업 매출(5조7320억원)로는 여전히 LG생활건강이 1위다.

아모레의 선전은 서경배 회장이 주도한 사업 체질 개선과 디지털 전환의 효과가 컸다. 국내 시장의 경우 온라인 매출이 약 40% 성장했다. 그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면세 채널에서도 선전했다.

먼저 지난해 9월 아모레는 기능성 화장품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코스알엑스’ 지분 38.4%를 1800억원에 인수했다고 ‘깜짝 발표’한 바 있다. 아모레가 수천억 규모의 국내 기업 M&A를 단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이 그동안 인수했던 곳은 2011년 프랑스 향수 브랜드 ‘구딸파리’(당시 ‘아닉구딸’·300억원대), 지난해 488억원으로 소수지분을 인수한 호주 스킨케어 브랜드 ‘래셔널그룹’이 전부였다.



오프라인 매장 효율화 전략도 본격화했다.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북미에선 온·오프라인 판매 채널을 확장하며 매출 성장폭을 키웠다. ‘라네즈’와 ‘이니스프리’가 미국 아마존에 입점하는 등 온라인 채널이 성장을 이끌었다. 유럽에선 브랜드 및 채널 다변화로 전체 매출이 성장했다. ‘라네즈’는 영국 이커머스 채널 컬트 뷰티에 입점하고 ‘이니스프리’는 세포라에 진출했다. 고전하던 중국 시장에서도 ‘자음생’ 등 고가 라인을 육성하고 이커머스 채널에 ‘설화수’의 입지를 넓히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났다.

그 결과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해 수익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보다 8% 증가한 5조3261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36.4% 증가한 3562억원을 달성했다. 주력 계열사 아모레퍼시픽은 같은 기간 매출 4조8631억원, 영업이익 343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9.7%, 140.1% 증가했다. 회사 측은 “채널 믹스 및 전통 채널 영업이익의 개선으로 전체 영업이익이 156%나 높아졌다. 특히 해외 시장의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190%나 늘었다”고 전했다.

LG생활건강이 미국 헤어케어 전문기업 파루크 시스템즈와 전문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 맞춤형 염모제 시스템 ‘LG CHI Color Master’를 개발하고 미국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고 밝혔다.


▶‘뷰티테크·헬스케어’ 같이 눈독

두 회사는 올 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높은 중국 수출 의존도가 독이 된 모양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으로 대표되는 국내 화장품 업체는 중국과 면세 부문 매출이 상당해서다. 특히 중국 현지에서 애국 소비를 권장하는 ‘궈차오’ 바람이 불면서 K뷰티의 위상마저 떨어졌다. 아모레퍼시픽 1분기 매출은 연결 기준 1조2000억원, 영업이익 1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면세 시장이 침체하면서 해외 사업 부진세가 이어졌다. LG생활건강도 사정이 좋지 않다.

유안타증권은 LG생활건강의 1분기 실적을 연결 기준 매출 1조9600억원, 영업이익 3000억원 수준으로 전망했다. 면세 매출 감소가 이어지며 화장품 부문에서 약세가 뚜렷하다. 주가 역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016년 7월 ‘한류’에 힘입어 중국 시장에서 호황을 누렸던 국내 화장품의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저가 화장품은 중국 현지 화장품에 밀리고 아모레퍼시픽 설화수나 LG생활건강의 후 등 브랜드는 글로벌 업체에 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상하이 빠바이반 백화점의 LG생활건강 후 매장


따라서 두 기업 모두 시장 다각화와 디지털 전환에 승부를 거는 모양새다.

차석용 부회장은 최근 북미지역 공략 강화를 위해 미국 화장품 브랜드 ‘더크렘샵’ 경영권을 인수했다. 지분 65%를 인수하기 위해 쓴 금액만 약 1500억원. 재미교포가 설립한 크렘샵은 K뷰티와 현지 감성의 조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높은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인수는 최근 3년간 LG생건이 보여준 뷰티 브랜드 인수와도 맥을 같이 한다.

LG생활건강은 ‘뉴에이본’ 인수, ‘피지오겔’의 아시아 및 북미 사업권 확보 등을 통해 북미 시장에서의 영역을 넓혀왔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적인 ‘명품’ 뷰티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차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글로벌 최대 시장인 동시에 트렌드를 창출하는 북미 시장에서 사업 확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도 디지털 전환에 힘을 쏟고 있다. ‘라네즈’를 신규 채널 세포라 앳 콜스에 입점시키고 ‘설화수’의 이커머스 플랫폼 진출을 확대한 게 대표적이다. 더마와 뷰티기기 역시 공통 미래먹거리다.



아모레는 안세홍 대표는 최근 주총에서 “2025년까지 전통적인 뷰티의 영역을 넘어 일상 전반을 포괄하는 ‘라이프 뷰티’로 도약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 정관도 변경했다. ‘의료기기 제조업 및 판매업’을 추가하는 것으로, 지난해 6월 합병한 ‘에스트라’ 사업을 위한 결정이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합병을 통해 최근 성장하는 더마 코스메틱 시장에 대비해 더마 사업 및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선언했다. 인적·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결합해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계획이다.

LG생건 역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기존 ‘의약품, 원료의약품, 의약외품, 의료기기 등 제조, 가공, 판매와 소분 매매’에서 수입에 대한 내용을 정관에 추가했다. 더마 코스메틱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LG생활건강은 더마 화장품과 데일리뷰티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20년 5월 영국 기업 ‘스티펠 헬스케어’로부터 피지오겔 브랜드의 아시아·북미지역 사업권을 취득하기도 했다. LG생건은 뷰티 의료기기 제조에도 관심을 두고 사업 목적에 내 의료기기 제조를 등재, 집에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뷰티 디바이스’ 연구 조직 신설 등을 검토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출시한 맞춤형 파운데이션 쿠션 제조 서비스 ‘베이스 피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칸타에 따르면 국내 뷰티의료기기를 포함한 더마 코스메틱 시장은 2017년 5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시장조사 업체 P&S인텔리전스는 글로벌 더마 코스메틱 시장이 연평균 6.5% 성장해 오는 2024년 763억달러(약 92조3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 전망도 마찬가지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P&S인텔리전스는 전 세계 더마 코스메틱 시장이 2025년 9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국의 경우 2015년부터 연평균 성장률 14%를 기록하며 지난해에는 39억달러(약 4조5000억원)까지 확대됐다. 유안타증권은 중국 더마 화장품 시장이 오는 2025년에는 105억달러(약 12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업계는 물론 패션·제약사까지 관련 시장에 눈독을 들이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LG생건과 아모레의 경쟁은 북미 시장과 신사업 분야의 성과가 관건”이라 내다봤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0호 (2022년 5월) 기사입니다]

기자 프로필

2000년 매일경제 주간국으로 입사해 주로 산업 및 경제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7년부터 매일경제 월간지 매경LUXMEN 취재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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