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는 힘껏 뛰는데···롯데, 이커머스 늪에 빠져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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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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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성큼 다가왔지만 ‘유통 공룡’ 롯데의 겨울만큼은 더 길어지는 듯 보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야심작으로 내세운 이커머스는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헤매다 수장이 물러났다. 롯데마트는 1998년 회사가 설립된 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사원부터 부장까지 전 직급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 중이다. 호텔롯데도 코로나19 여파로 실적 악화의 늪에 빠졌다. 어디가 바닥인지 모를 만큼, 재계 5위 롯데는 반전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 현대차 ‘전기차’ LG ‘배터리’ 등 재계 선두 기업이 앞다퉈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롯데는 성장동력 발굴은커녕 위기를 수습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유통 라이벌 신세계나 현대백화점과 비교해도 활기가 떨어진다. 야구단 인수를 위해 최태원 SK 회장을 직접 만나 설득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자연친화 백화점으로 승부수를 띄운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과 같은 파격적인 행보를 신동빈 회장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도 뼈아프다.



▶30년 롯데맨, ‘롯데온 부진’ 사퇴

▷점유율 못 늘리고 고객 불만 여전

롯데가 가장 아파하는 사업은 이커머스다. 롯데쇼핑에서 그룹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을 이끌어온 ‘30년 롯데맨’ 조영제 이커머스 사업부장(대표)이 최근 물러났다. 롯데지주는 조 부장이 사업 부진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롯데 안팎에서는 신 회장이 책임을 물은, 사실상 경질이라는 해석이 주류다. 신 회장은 올해 첫 VCM(옛 사장단 회의)에서 “업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는데도 부진한 사업은 전략이 아닌 실행이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롯데온에 힘을 실어줬는데도 제대로 사업을 키우지 못한 데 대한 질책성 발언이었다.

롯데는 1996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쇼핑몰 ‘롯데닷컴’을 선보였다. 그러나 온라인 지배력은 명성에 걸맞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고 유통 명가 자존심을 세우겠다며 지난해 4월 출범시킨 조직이 롯데온이다. 7개 유통 계열사 쇼핑몰을 통합한 그룹 신성장동력이었다. 2023년 온라인 매출 20조원, 이커머스 1위라는 당찬 목표도 세웠다. 신동빈 회장이 그룹 축으로 내세웠던 ‘유통’과 ‘화학’ 중 이커머스는 유통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

롯데 미래를 밝혀줄 구세주로 주목받았지만 성적은 초라했다. 롯데온 출범 이후 롯데 쇼핑몰 거래액 추이는 상대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지난해 2분기 거래액은 1조8000억원대로 1분기 대비 1000억원가량 줄었다. 블랙프라이데이 등 유통가 빅 이벤트가 있었던 4분기에서야 겨우 2조2000억원대로 올라섰다. 결국 롯데온의 지난해 거래액은 7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 증가에 그쳤다.

이는 이커머스 시장 평균 거래액 성장률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수치다. 지난해 쿠팡은 2019년 대비 41% 거래액이 늘어난 21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11번가 역시 전년 대비 10% 늘어난 10조원이 거래됐다. 특히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여러 유통 기업이 재평가받는 가운데 롯데는 전혀 이름을 내지 못했다.

일단 기술 결함이 잦았다. 일시적인 트래픽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접속 오류를 빚었다. 심지어 대대적인 프로모션 때도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체면을 구겼다. “온라인 손님을 모아놓고 동시 접속자 증가량조차 예상 못했느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였다. 상품 소개가 부족하고 반응 속도가 느리다는 소비자 민원은 뼈아프다.

마트도 시끄럽다. 롯데마트는 지난 2월 24일 사내 인트라넷에 정직원 4300여명 중 동일 직급별 10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공고했다. 직원을 잘 자르지 않는, 정년 보장 기업이라는 롯데 이미지를 무색하게 만든 대대적인 구조조정이었다. 롯데 직원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롯데는 이미 롯데푸드, 롯데GRS, 롯데아사히주류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롯데하이마트, 호텔롯데가 역시 희망퇴직을 실시한 바 있다. 롯데하이마트 희망퇴직은 창사 20년 만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접목 시도

▷외부 전문가 수혈해 새바람 기대

코로나19 여파에 더해 이커머스·오프라인 매장 부진 등으로 롯데쇼핑 전체 매출은 급락했다. 지난해 롯데쇼핑 매출은 16조762억원으로, 2016년(29조5264억원)과 비교해 반 토막 났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9409억원에서 3461억원으로 급감했다. 마트의 최근 3년간 누적 영업이익은 20억원에 그친다. 슈퍼는 이익은커녕 누적 영업손실이 1860억원에 이른다.

롯데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 중이다. 우선 조영제 부장이 물러난 이커머스 리더 자리에 외부 인사를 앉혀 새바람을 넣을 듯 보인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로 유명한 롯데에서 외부 전문가를 신사업 수장에 앉히는 일 자체가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롯데가 느끼는 위기감이 크다는 의미다.

쇼핑에서는 미국 월마트식 전략을 강화한다. 월마트 방식은 기존 오프라인 대형마트 인프라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한다. 이곳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인근 매장에서 픽업하는 식이다. 쿠팡과 같은 온라인몰 중심 기업은 실행하기 어려운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다. 롯데쇼핑은 이미 지난해부터 일부 도입한 이런 점포(세미다크스토어)를 올해까지 29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낸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2월 오프라인 점포 700개 중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 200개를 닫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1년도 안 돼 목표 절반을 달성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올해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의 점포 정리를 하며 당초 3~5년으로 예상한 구조조정 기한을 2년 안에 마무리할 듯 보인다.

이커머스는 결제 시스템을 손본다. 롯데멤버스에 맡겨온 결제대금 예치제(에스크로) 업무를 e커머스 사업부로 이관한다. 또한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무 일부를 직접 맡는다.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온라인 사업 강화를 위한 결제 데이터 확보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도다. 쿠팡이 자회사 쿠페이를 통해 e커머스에 최적화한 간편결제를 도입한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이 같은 위기 타개책에 대한 롯데 안팎 시각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롯데온에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도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그중 하나다. 외부 전문가가 보수적인 롯데그룹 문화에서 전권을 휘두르며 리더십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롯데온 책임자는 롯데쇼핑 내 사업부장급이다. 계열사 협조가 원활하지 않으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 롯데온 이커머스 확장 과정에서 사업부 간 이견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때문에 정말 힘 있는 외부 인사가 들어오고 신 회장이 전권을 맡겨야 그나마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한 롯데 직원은 “롯데는 오프라인으로 성장해 이커머스 DNA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조직원 사이에 스멀스멀 퍼진 패배감이 더 문제다. 내부 인사든 외부 인사든 조직원 의욕부터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이 협업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새겨들을 만하다. 최근 유통업계는 ‘컬래버’가 대세라고 할 만큼 기업 간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지난 1월 정용진 부회장이 분당 네이버 사옥을 직접 찾아간 게 한 사례다. 신세계가 대규모 투자로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한 이후 네이버와는 일종의 경쟁 관계였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만나 이커머스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증권가에서 롯데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유정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대형마트는 오랫동안 쇼핑 수익성을 끌어내렸는데 최근 구조조정 효과가 나타났다”며 “코로나19 여파로 힘겨웠던 백화점 실적이 좋아질 수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반면 박은경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점유율을 늘리지 못한 채 점포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초기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온라인 대규모 투자를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투자로 사업을 키워온 쿠팡 모델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으로 읽힌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9호 (2021.03.10~2021.03.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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