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당근마켓 지켜달라"는 아내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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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3.12. 오전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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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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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당근마켓 /사진=당근마켓

요새 주부나 직장맘들이 자주찾는 맘카페에서 당근마켓 만큼 핫(?) 한 게 없다. 쓸모없는 중고물품을 당근마켓에 싼값에 올리면 족족 팔려나간다. 어느새 커버린 아이들의 옷가지나 장난감, 홈쇼핑에서 혹해서 샀던 물건들까지 다양하다. "오늘은 어떤 게 나왔을까", '아이쇼핑'만 해도 힐링이 된다. '1일 1당근' 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어차피 자리만 차지하고 버리려면 돈 들어가는 불용품을 싸게 처분하면 용돈벌이가 되고 자원낭비도 막으니 1석2조다. 무료나눔하면 베품의 미덕도 얻는다. '당근거지'(무료나눔을 되파는행위)나 '신생아 판매시도' 같은 막장행위가 더러 있지만 이는 소수의 일탈이다. 동네 인근에서 대면 거래하니 안전하고 몇 만원 단위 소액이어서 분쟁도 적다. 당근마켓처럼 이용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도 드물다. 제2의 배민, 카카오톡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당근마켓이 발칵 뒤집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예고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때문이다. 문제가 된 것은 개인간 거래(C2C)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판매자의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를 구매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회원 가입시부터 업체가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는 얘기다. 벌써부터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 댓글에서 험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1만원짜리 중고품을 팔거나 무료나눔하는데 왜 신상정보를 제공해야 하나?" "거래 틀어지면 칼들고 찾아 가라는 얘기냐" 등등.

물론 사기 거래처럼 의도된 범죄는 응당 법적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나 선량한 개인 판매자라도 언제든 거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나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이름과 전화번호, 집주소 등 개인정보가 구매자의 요구로 고스란히 넘어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안그래도 각종 스토킹이 빈번한 시대에 분쟁을 빌미로 개인정보를 취득하려는 시도를 배제하기 어렵다. 언제든 범죄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어찌어찌 분쟁이 해결됐다 해도 한번 전달된 개인정보가 제대로 파기될 지도 의문이다. 당근마켓의 회원 수는 2000만명, 하루 이용자는 1400만명에 달한다.
공정위는 개인간 거래에서 판매자의 연락두절이나 환불거부, 사기거래로 인한 각종 소비자 피해 예방과 구제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역시 옹색하다. 택배거래가 아닌 물건을 직접 확인하는 대면 거래는 분쟁이 드물다. 또 플랫폼내 각종 분쟁조정 장치도 이미 가동중이다. 그게 안되면 공공기관인 인터넷진흥원의 분쟁조정 제도를 거치거나 최악의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하면 된다.

개인정보 전달의 효과도 모호하다. 개인들이 직접 분쟁을 해결하라는 얘기여서다. 중고나라 사기꾼은 수사기관이 잡아야할 일이다. 무엇보다 분쟁 우려 때문에 개인정보를 모두 내놓으라는 것은 선량한 시민들의 신상을 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정부가 만든 '개인정보 최소수집 원칙'을 정부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앞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지난해 장관급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만들었고 코로나19 수기장부의 전화번호와 이름이 노출된다 해서 6자리 개인 안심번호까지 채택했다. 공정위는 법안을 만들기 전 관계기관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반대 의견이 나올 게 자명하니 '바이패스'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법이 시행되면 자칫 사업을 접어야지도 모를 당근마켓 등에 법안을 사전 설명하지도 않았다. 논란이 거세지자 12일 뒤늦게 부르기로 했다. 공정위는 "법개정으로 개인간 거래 신뢰도가 제고되고 자율분쟁 해결이 강화되면 개인간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재차 해명했지만 이에 동의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상식 밖의 법안이 어떻게 튀어 나왔을까.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최근 급성장한 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다 무리수를 둔 것이라 본다. 1년 뒤 차기 정부출범을 앞두고 이미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등을 앞세워 다른 정부부처와 영역다툼을 벌이고 있다. 물론 욕심이 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최소한의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제발 나의 소중한 당근마켓은 건드리지 말라"는 아내의 호소가 더 무겁게 들린다.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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