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나만 파는 ‘버티컬커머스’ 전문성 무기로 소비자 마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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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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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곧잘 요리를 해서 음식을 즐기는 30대 김유진 씨는 한때 애용하던 마켓컬리와 쿠팡 앱을 잘 열지 않는다.

대신 어떤 요리를 할지에 따라 특화된 전문몰 앱에 접속한다. 김 씨는 “고기가 필요할 때는 정육각을 이용하고, 수산물이 필요하면 오늘회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무신사에서 옷을 구매하고, 오늘의집에서 집꾸미기 용품을 사는 게 특별한 게 아니라 일반적인 일로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네이버와 쿠팡, SSG닷컴 롯데온 등 최근의 이커머스 기업들은 하나같이 다양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양질의 셀러(판매자)를 모집하고, 소비자에게는 개인의 취향에 맞는 여러 물건을 제때 소개해주는 것이다. 이같은 방법과는 정반대로 ‘딱 하나만’ 팔면서 성장한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있다. 무신사(패션), 오늘의집(인테리어), 정육각(식품) 등 버티컬커머스라고 불리는 전문몰이다. 카테고리 킬러(Category Killer) 플랫폼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11월 와이즈앱이 한국인 만 10세 이상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쇼핑 앱을 조사했을 때도 이 같은 트렌드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조사 결과 쿠팡, 11번가, G마켓 다음으로 패션 버티컬 플랫폼 에이블리(528만 명)와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474만 명)이 각각 4위와 5위를 차지했다. 특히 20대 순위 상위 8개 중 6개가 지그재그, 에이블리, 무신사, 브랜디, 올리브영, 아이디어스 등 전문몰이었다.

이 같은 플랫폼들의 성장세는 통계청 수치를 봐도 종합몰을 압도한다. 전문몰의 지난해 3분기 거래액은 17조5123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34.9% 늘어난 수치다. 네이버와 쿠팡 등 종합몰의 성장률은 12.3%로 절반 수준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버티컬커머스는 딱 한 가지 카테고리의 물건만을 취급하며 전문성을 확보한다. 하나의 카테고리에서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관련 콘텐츠들과 함께 스토리를 판다”며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시청할 때도 특화된 주제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인기가 큰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무신사, 머스트잇이 주도하는 ‘패션’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지난해 90%를 상회하는 큰 폭의 성장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무신사, 29CM, 스타일쉐어, 솔드아웃 등 지난해 무신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의 거래액 총합이 2조3000억원을 기록하며 패션 플랫폼 최초로 거래액 2조 시대를 연 것이다. 이 같은 성장에는 도프제이슨, 라퍼지스토어, 리, 마크곤잘레스, 예스아이씨, 예일 등 1020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국내 브랜드의 매출 신장이 주효했다.

고객 활성화 지표도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400만 명에 달한다. 회원 수는 2020년보다 30%가량 증가해 누적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무신사는 패션 카테고리 안에서도 특정 분야를 파고드는 마케팅을 펼친다. ‘골프’ 테마가 대표적이다. 무신사에 골프판을 연 지 1년 만에 입점 브랜드가 10배 이상 증가했고, 올해 1분기에만 200개가량 확장됐다. 필드 패션을 제안하면서도 일상에서도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할 수 있는 브랜드 패션을 적극 마케팅한 덕이다. 무신사는 2030 영 골퍼를 위한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며 골프 거래액 상장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입문자는 물론 정통 골퍼를 위한 다양한 브랜드 입점을 확대하며 성장세를 가속화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무신사 관계자는 “이커머스 트렌드가 변화함에 따라 ‘버티컬플랫폼’은 그 자체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다”며 “올해도 패션 카테고리 중 키즈, 여성복, 스포츠 분야에서 전문 큐레이션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 ‘보복소비’의 형태로 늘어난 명품 소비 트렌드에서 명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머스트잇’의 성장도 눈에 띈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거래액만 3500억원을 달성하며 누적 거래액 1조원을 돌파했다. 2011년 설립된 회사는 1300여 개 명품 브랜드 상품 180만 개를 판매하는 명품 전문 커머스 플랫폼이다.

머스트잇은 백화점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같은 상표의 상품을 여러 업자가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 병행 수입 방식을 활용해 백화점과 비교해 평균 20~25% 저렴하다. 지난해 5월 카카오인베트스먼트, 케이투인베스트먼트로부터 130억원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면서 2000억원이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여성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도 2018년 3월 론칭한 이후 4년 만에 하루 이용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2월 평균 일간 활성 사용자 수(DAU)는 112만 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66% 증가한 수치다. 상품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는 에이블리 ‘상품 찜’ 수는 누적 6억 개, 리뷰 수는 2500만 개를 돌파했다. 지난해 와이즈앱에서 실시한 ‘MZ세대에서 가장 자주 사용한 앱’ 조사 결과에서도 에이블리는 한 달간 평균 앱 실행 횟수 5억7000만 회로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에이블리는 10대들이 에이블리 앱과 SNS를 연계해 사용하는 양상을 보여 주목된다. 글로벌 숏폼 플랫폼 틱톡에서 ‘에이블리’ 해시태그 콘텐츠 조회 수는 3억7000만 건이었고, ‘에이블리 추천’ ‘에이블리 후기’도 1200만 건에 육박했다.



▶정육각, 초록마을 인수하며 ‘식품’서 주목

2016년 설립된 축산물 전문 버티컬커머스 정육각은 축산물 유통망의 복잡한 구조를 혁신한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축산물은 통상 축산 농장에서 도축 완료한 원물(고기)을 도매, 세절 공장, 소매점을 거쳐 판매된다. 반면 정육각에서는 자체 공장에서 직접 세절하고 상품화, 배송하는 식으로 유통 단계를 대폭 축소시켰다. 특히 소비자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상품을 제조해 소비자에게 당일배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재고 관리 역량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대상그룹의 초록마을을 900억원에 인수하며 다시 정육각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정육각은 올해 3월 대상홀딩스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친환경 유기농 전문업체 초록마을의 지분 99.57%를 9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초록마을 인수전에 바로고, 컬리, 이마트에브리데이 등 이름 있는 기업들이 모두 뛰어들었으나 정육각이 이들을 모두 제쳤다.

정육각은 초록마을 인수로 온라인 중심의 유통망을 오프라인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축·수산물을 넘어 과채류·가공식품 등으로 취급 품목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두 회사는 신선식품을 취급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축산물과 과채류·가공식품, D2C 제조 역량과 전통적인 유통 네트워크 등 각자의 장점이 명확하게 갈린다”며 시너지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체 오아시스마켓은 올해 초 홈앤쇼핑으로부터 10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1조200억원 유니콘 기업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2011년 우리소비자생활협동조합 출신의 김영준 대표가 설립한 오아시스마켓은 현재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 지역에 새벽배송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새벽배송 업체 가운데 유일한 흑자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오아시스마켓은 새벽배송을 통해 판매되지 않은 재고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재판매해 재고 폐기율을 낮춘다. 50여 개가 넘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이동한 상품은 할인 등을 적용해 판매되기 때문에 다시 재고가 될 가능성이 낮다. 판매량, 상품 상태, 고객 반응 등에 따라 매장별로 자율적으로 할인율을 적용한다.

수산물 커머스 플랫폼 오늘회는 지난해 9월 기준 누적 매출 300억원을 달성했다. 오늘회는 신선식품에 특화된 자체배송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1일 3회 당일배송도 진행 중이다. 오늘회 플랫폼을 운영하는 오늘식탁은 최근 ‘배송 예측 AI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을 시작했다. 이 시스템은 오늘식탁에서 배송을 주문하는 고객들이 내가 받아볼 상품이 언제 도착할지 사전에 예측해 제공하는 것으로, 평균 예측 정확도가 87%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인테리어는 ‘오늘의집’… 기업가치만 2조

인테리어 콘텐츠·커머스 플랫폼인 오늘의집은 이 분야에서 압도적인 거래액과 사용자 수를 달성하며 기업가치 2조원 이상을 평가받고 있다. 2014년 설립된 오늘의집은 인테리어 관련 상품 판매와 시공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설립 초기에는 커뮤니티 형태로 시작했다가 최근에는 가구·인테리어 소품 판매, 인테리어 시공 중개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해 8월 기준 월간 순사용자 수(MAU)는 540만 명으로 전문몰 기준 국내 최대고, 누적 거래액만 2조원을 넘었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된 데다,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맞물리며 요즘 ‘집 꾸미기’는 필수 트렌드로 떠올랐다. 10평 남짓 원룸에 살더라도 내 취향에 맞는 가구로 채워진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다.

오늘의집은 고객들이 ‘온라인 집들이’를 하는 느낌을 선사하며 파이를 키워왔다. 이용자들이 본인의 공간을 직접 소개하는 형태로 콘텐츠를 공유하면, 콘텐츠 속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누르기만 하면 제품 구매 정보로 연결되는 것이다. 내 공간의 크기와 예산 등 세부적인 기준에 맞춘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의성이 높다.



▶전문몰의 고민은 ‘고객 록인’… 확장 문제 풀어야

전문몰들은 최근 상품 취급 영역을 넓히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위한 시도도 하고 있다. 대표적인 회사는 마켓컬리다. 신선식품 테마로 성장을 구가해온 마켓컬리도 최근 여행·가전·뷰티 등으로 상품 취급 영역을 넓혔다. 패션 플랫폼들은 ‘리빙 카테고리’로 파이를 키우는 중이다. 무신사는 삼성전자의 TV·에어컨·냉장고 등 대형 가전을 판매하는데, 현재 판매하는 상품만 170여 개에 이른다. 신세계그룹에 인수된 W컨셉도 패션을 넘어 삼성 비스포크 라인업을 입점시켰다.

이 같은 행보는 전문몰 시장 자체로는 카테고리 내부의 상품 개별 단가가 낮거나, 시장 자체가 한정돼 매출을 크게 늘리기 어려운 측면에서 비롯한다. 여행·리빙·가전 등 카테고리는 식품·패션에 비해 상품 단가가 높기 때문에 이들 분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더구나 네이버나 쿠팡 등 종합몰이 자신의 카테고리를 키우게 되면, 고객 록인 효과가 떨어지면서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쿠팡이 로켓프레시로 신선식품 분야를 키우고 나서 다른 경쟁사들의 매출이 줄어든 게 대표적인 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커머스 외형 키우기에만 집중하다보면, 전문몰이기 때문에 이용해왔던 고객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회사의 파이를 키우려다, 충성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몰 입장에서는 굉장히 딜레마 상황에 봉착해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카테고리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대기업 중심으로 자신의 카테고리를 치고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다른 분야로 넘어가고 싶은 게 당연하다”면서 “하지만 다른 몰과 차별화된 포인트 없이 유사한 형태로 외형만을 키우면 해당 몰을 이용하던 원조 충성고객들은 ‘변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딜레마적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가 이커머스 경쟁의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9호 (2022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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