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고 나중에 내라" 미 MZ세대 사이 BNPL 인기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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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9.30. 오후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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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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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밀레니얼세대를 중심으로 선지불 후결제 서비스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BNPL(Buy Now Pay Later) 서비스다. 온라인 쇼핑몰에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시대인 데다, 구매력이 왕성하지만 금전적 여유가 없는 세대들이 구매 수단으로 BNPL을 선택하고 있다. 또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진을 통해 인증하는 문화도 소비를 부채질하고 있다. 젊은 층이 전통 금융권을 이용하는 것보다 모바일 서비스 이용을 더 친숙해 하는 점도 BNPL이 부상한 이유다.

CNBC는 앞서 “BNPL 산업이 미국에서 성장하고 있다”면서 “컴퓨터나 디자이너 브랜드 같은 값비싼 제품들을 바로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BNPL이 무엇이기에 각광을 받는 것일까. <매경LUXMEN>이 BNPL 트렌드를 짚어봤다.



▶1641년 순례자 분할납부 허용이 시초

BNPL은 쉽게 말해 할부 서비스다. 다만 핀테크 기업이 소비자와 전자상거래업체 사이에 서서, 소비자에게는 미래 특정 시점에 지불할 수 있는 이른바 POS(Point of Sale) 할부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자상거래업체에는 조기에 판매 대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종전 할부 서비스와는 다르다. 양방향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BNPL은 2010년 이후로 부상했지만, 그 서비스의 근간인 할부는 역사가 꽤 길다. 잠시 할부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세시대에도 누군가에게 대출을 해주는 이른바 고리대금(대부) 서비스가 있었다. 하지만 고리대금업은 도덕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였다. 중세 신학자는 7가지 죄악 중 첫 번째를 탐욕에 두었고, 대표적인 사례를 고리대금으로 꼽았을 정도다. 하지만 돌고 돌아야 할 돈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법. 그래서 교황청이 자선 사업을 위해 공공 전당포인 몬테피에타티스를 설립했다. 1515년에 레오10세는 몬테 피에타티스에 대해서만큼은 죄악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자선 사업을 위한 일이었지만 공교롭게 이는 대출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대항해시대를 맞아 신용 거래는 서서히 꽃을 피운다. 교역을 할 상대가 너무 먼 데다, 화폐 자체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720~1760년대에는 신용을 거래(채권 유동화)하는 금융이 등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의 신용을 당시 데이터로는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1800년대 들어 신용조사 산업이 싹을 틔웠지만, 당시 신용보고서는 소문을 듣고 쓰는 경우도 많았고, 대상자가 자신의 신용보고서를 열람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BNPL에 대한 아이디어도 이러한 금융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1641년 런던에서 순례자를 상대로만 빚을 4년간 분할해 갚도록 허락해 준 것이 시초다. 1840~1890년에는 소비 붐을 타고 피아노, 가구, 농기구 등을 신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가장 공격적으로 BNPL을 한 기업은 재봉틀업체 싱어였다. 1년 만에 매출을 3배 이상 올리는 기염을 토해 당시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싱어의 모토는 ‘1주일에 고작 1달러’였다. 그리고 1960년 신용카드의 부상은 소비 패턴을 크게 바꾼다.

▶2021년부터 매년 22.4% 성장

BNPL 산업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리서치업체인 그랜드뷰에 따르면, 2021년부터 매년 22.4%씩 성장해 2028년 204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수많은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이 BNPL 솔루션을 도입하고 있는 데다,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증빙이 편리해 이용이 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랜드뷰는 “패션과 의류 분야에서 가장 높은 성장이 예상된다”면서 “특히 밀레니얼세대의 참여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은 BNPL 기업들과 앞다퉈 제휴를 하고 있다.

아마존이 어펌(Affirm)을 도입했고 미국의 핀테크 기업 스퀘어가 290억달러(약 33조원)에 호주에 본사를 둔 애프터페이(Afterpay)를 인수하기도 했다. 현재 BNPL 시장의 선두주자는 어펌, 애프터페이, 클라나(Klarna)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이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고 이자 없이 건당 약 10달러 이내 과금을 하는 곳도 있다. 이들 업체는 소비자 은행 계좌와 연동되는 플러그인을 제공해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결제할 경우 클릭 몇 번 만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종전 신용 등급 평가법과 달리 핀테크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대다수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대출 한도도 핀테크 기업마다 다른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핀테크 기업 어펌을 살펴보도록 하자.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맥스 레브친이 설립한 어펌은 소비자와 전자상거래업체의 중간에 서서 가교 역할을 하는 스타트업이다. 예를 들면, 이커머스업체는 어펌의 솔루션을 웹에 연동할 경우 어펌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옵션에 따라 최대 1만7500달러를 최장 36개월까지 상환 납부할 수 있는 할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반면 판매자들은 어펌으로부터 영업일 1~3일 이내에 자금을 받을 수 있다. 일반 이커머스 셀러들이 플랫폼을 통해 자금을 정산 받는 데까지는 최장 60일이 걸리는 매우 놀라운 속도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판매자들이 어펌의 BNPL 서비스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620만 명이 사용 중인 어펌


▶BNPL 채권 유동화로 규모의 경제 달성

어펌이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함과 동시에 판매자로부터 고객에게 상품 값을 청구할 권리인 채권을 인수해 이를 여러 금융권에 유동화(채권을 파는 행위)를 한다. 빠른 자금 회전을 위해 어펌은 인수한 채권을 크로스리버뱅크, 셀틱뱅크, 어펌 론 서비스 등을 통해 매각하는 절차를 밟는다. 할부 이자는 신용도에 따라 최대 30%를 적용하지만, 고객 중 43%는 이자를 적용하지 않고 있으며, 전체 평균은 연 18%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펌이 수많은 상대로 대출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마존과 월마트가 주요 고객사고 산업 전반에 걸쳐 1만1500개 이상에 달하는 이커머스 업체들이 어펌을 쓴다. 이를 통한 사용자 수만 620만 명에 달한다. 전자상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인 기업들의 주문당 평균 구매 단가(AOV·Average Order Value)는 어펌을 도입하기 이전보다 47% 이상 향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레브친 창업주는 “신용카드는 50년 전에 발명됐다”면서 “이제는 소비자 금융이 바뀔 차례”라고 강조한다. BNPL 서비스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기술은 복잡하다.

전자상거래업체들이 웹과 앱에 어펌의 솔루션을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로 부착하면 고객들이 지불 결제를 할 때, 어펌의 핀테크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어펌은 앱 관리자와 판매자가 동일해야지만, 지불 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익스프레스 체크아웃 방식’이 아닌, 앱 관리자와 판매자가 다르더라도 사용이 가능한 ‘적응형 체크아웃’ 기술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고객이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있는 개인 사업자로부터 자동차 청소 용품 패키지를 결제한다면, 구매 대금을 핀테크업체를 거쳐 판매자와 물건을 납품한 제조업체로 분산해 보낼 수 있다. 이러한 적응형 체크아웃 방식은 높은 응용성에 힘입어 다양한 전자상거래에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판매업자가 여러 공급업체에 판매 대금을 일시에 지불할 수 있고, 연쇄적으로 A업체, B업체, C업체에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

▶절반 이상 고객이 MZ세대

또 어펌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 텔레마케팅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옴니채널’을 지원한다. 지불 기간도 자유자재로 설정이 가능하다. 어펌의 BNPL을 찾는 이들은 대다수 MZ세대다. 47.8%에 달한다. X세대(1970년 중~1980년 초반생)가 뒤를 이어 32.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택트 시대를 맞아 누구나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지만, 금전적 여유가 적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다. 어펌의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가맹점 수수료와 대출 이자로 구성돼 있다. 우선 셀러들의 고객들이 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이자를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또 마케팅 도구, 구매 분석 등 도구를 제공하고 가맹점 서비스 비용을 청구한다.

어펌을 창업한 맥스 레브친은 미국 내 대표적인 연쇄창업가다. 1975년생인 레브친은 우크라이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 사고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고 1997년 일리노이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에는 루크 노섹·스콧 브레인스터와 함께 스폰서넷뉴미디어라는 기업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졸업 후 이듬해인 1998년에는 페이팔을 공동 창업했다. 그는 2004년 페이팔을 매각하고 개인 미디어 공유 서비스인 슬라이드를 설립했으며 이마저 2010년 구글에 매각하고 2012년에는 팔란티어의 공동 설립자 네이선 게팅스와 퍼스트데이터의 제프 카디츠와 함께 어펌을 설립해 오늘날까지 CEO로 활동하고 있다.

어펌(Affirm)은 영어로 ‘긍정하다’라는 뜻으로, 강한 긍정을 나타낸다. 또 재판정에서는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맹세를 할 때 ‘어펌’이라고 한다. 그만큼 상호명에 진실과 긍정으로 회사를 일구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올해 1월 나스닥에 상장됐으며 시가총액은 약 255억달러다.

소프트뱅크 투자를 받은 BNPL 스타트업 클라나


▶전자상거래 시대와 핀테크의 융합

어펌 외에 시장의 선두주자는 애프터페이와 클라나다. 애프터페이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핀테크 기업 스퀘어가 290억달러(약 33조원)에 인수를 진행 중이다. 애프터페이는 2015년 설립돼 2018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이 온라인서 구매한 뒤 결제는 향후에 할 수 있는 BNPL 서비스다. 특히 신용카드 결제에 대한 두려움을 갖거나 신용카드를 만들지 못하는 MZ세대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애프터페이 이용자는 1600만 명 이상이다. 클라나는 스톡홀름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핀테크 기업으로 스웨덴 전자상거래의 40%가 클라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올해 6월,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기업가치는 올해 3월 대비 약 50% 상승한 456억달러로 평가받았다. 이 밖에 일본에 페이디라는 BNPL 기업이 있는데 페이팔이 약 27억달러(약 3조1680억원)에 인수했다.

페이팔은 국경 간 간편결제 서비스에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해 본격적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BNPL 분야에서 M&A, IPO, 신규 서비스 출시 등 합종연횡이 활발한 대목이다. 월드페이(Worldpay)의 보고서는 ‘선구매 후결제’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결제 솔루션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네이버·카카오·쿠팡 등이 속속 베타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BNPL이 당분간 도도한 물결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전자상거래 시대다. 이커머스 시대가 찾아왔지만 아직 지불 결제는 전통적인 방법이 95%에 달한다. 셀러들은 보다 빨리 대금을 받고 싶고, 소비자는 돈을 가급적 늦게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이를 BNPL 서비스들이 채울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SNS, 이커머스, 핀테크의 융합이다.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도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커머스에 뛰어들었다. 인플루언서가 셀러가 되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전문 셀러들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도구를 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판매자들이 고객 지갑을 잡을 수 있다. 결제가 유연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이커머스업체들이 내내 고객 지갑을 붙잡고 있는 것을 뜻한다.

할부. 이는 고객이 한 번 구매하고 떠나지 않고 이커머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BNPL에 더 많은 셈이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을 무렵에는 기존 금융사들이 경쟁(Competition) 상대로 여겨 무척 긴장했다. 하지만 페이팔, 이베이 간 협업(Cooperation)이 대표적인 것처럼 곧 협업 대상이 됐다. 미래 BNPL은 경쟁적 협업 관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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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오늘 시작합니다" 미래를 찾아드리는 에반젤리스트를 꿈꿉니다. 미라클레터를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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