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DNA' 롯데, '이커머스의 늪'에서 빠져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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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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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지지부진한 롯데ON, 전문가 영입으로 조직 강화
백화점·아울렛 오픈하며 하반기 오프라인에 역량 집중


'전통의 유통 강자'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롯데의 한 가지 사업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롯데의 가장 아픈 손가락, 이커머스다. 1996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쇼핑몰 '롯데닷컴'을 선보이며 유통 명가의 자존심을 세우고자 했던 롯데는 이커머스가 유통의 핵심 중 핵심으로 올라선 현재까지도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쇼핑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ON을 출범시키며 '2023년 온라인 매출 20조원' '이커머스 1위'라는 당찬 목표를 세웠지만 결국 이번에도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8월20일 오픈한 롯데백화점 동탄점의 모습ⓒ연합뉴스


이커머스 업계 성장세에도 적자 폭 커져

롯데쇼핑의 지난 2분기 성적을 살펴보자. 매출은 3조9025억원, 영업이익은 75억7300만원이다. 매출은 전년 대비 3.5%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444.7% 증가했다. 실적을 견인한 것은 백화점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명품 보복 소비가 늘어났고, 이에 힘입어 백화점은 2분기 매출 7210억원, 영업이익 620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캐시카우'였던 하이마트와 홈쇼핑은 부진했다. 2분기 하이마트는 전년 대비 11.4% 줄어든 98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2.3% 감소한 330억원이었다. 홈쇼핑 매출은 4.9% 늘어난 2730억원이었지만, 송출 수수료와 신사업 운영비가 증가하면서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8.1% 감소한 310억원을 기록했다.

롯데가 야심 차게 밀어붙이는 이커머스 분야의 성적은 어떨까. 롯데ON이 속한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부의 지난 2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10% 감소한 290억원, 영업손실은 320억원으로 적자 폭이 커졌다. 롯데ON은 초기부터 안정적 서비스 제공에 차질을 빚으면서 고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쿠팡·네이버 등 이커머스 강자에 밀려 제대로 된 성과도 내지 못했다. 작년 롯데ON의 거래액은 7조6000억원. 네이버가 28조원, 쿠팡이 22조원의 거래액을 기록한 것에 비해 한참 뒤처진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거래액은 전년에 비해 19% 신장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커머스 업계가 연일 성장세를 보이는 와중에, 이커머스 사업에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롯데의 경쟁력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롯데쇼핑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ON 화면


롯데쇼핑은 매출 감소 요인으로 수수료 매출 감소와 수수료 회계기준 변경을 꼽았다. 롯데ON은 지난해 4월 오픈마켓으로 전환한 이후, 셀러(판매자) 확보를 위해 수수료 인하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플랫폼을 활성화하기 위해 상품 판매자들에게 수수료를 낮춘 것이 매출 감소로 이어졌고, 그동안 매출로 인식되던 계열사 수수료가 지난해 4월부터 '비용'으로 인식되면서 매출 규모가 줄었다는 것이다. 사업을 더 키우기 위해 발생한 결과라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매출 감소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 결국 실적은 롯데쇼핑이 현재 직면한 상황을 보여준다. 원래 잘하던 백화점 사업 부문에서는 선전하고 있고, 오프라인 매장 구조조정을 통해 손실 폭도 줄였지만, 여전히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이커머스 사업의 실적은 부진하다는 것이다. 정소연 교보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도 구조조정에 따른 이익 개선보다 경쟁 심화에 따른 비용 증가의 영향이 클 것"이라며 "롯데쇼핑도 이커머스 역량을 재정비해 고성장세를 시현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롯데의 패착은 뭘까. 오프라인에서 축적한 역량만으로 이커머스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롯데 역시 이 같은 점을 파악하고 롯데ON을 중심으로 이커머스 조직 개편에 나서고 있다. 롯데는 지난 4월, 사실상 경질된 조영제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부 대표의 후임으로 나영호 이베이코리아 전략사업본부장을 선임했다. 나 대표는 이베이코리아에서 간편결제와 모바일 e쿠폰 사업 등을 추진한 이커머스 전문가로, 롯데닷컴 창립 멤버 출신이다. 20여 년 만에 롯데의 온라인 플랫폼을 재건해야 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롯데는 나 대표를 선임하면서 대표직을 부사장급으로 격상했는데, 온라인으로 그룹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인력도 재배치하면서 조직을 일원화했다. 롯데쇼핑 내 백화점, 마트 등의 온라인 인력을 롯데ON으로 집결시켰다.



과거 롯데의 몸집을 키운 공격적 M&A와 비교

온라인 DNA가 부족한 상황에서 거론되는 해결책 중 하나는 M&A(인수·합병)를 통한 이커머스 시장 지배력 강화였다. 오프라인 역량이 큰 전통 기업들이 이커머스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빠르게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M&A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장 점유율 3위인 이베이코리아의 인수가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지난 6월 이베이코리아를 품은 것은 신세계였다. 지난해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의 연간 거래액은 약 4조원, 시장 점유율은 2.5% 수준이지만 이베이코리아를 더하면 거래액 24조원, 점유율 15%로 올라 업계 2위인 쿠팡을 넘어서게 된다. 이베이코리아가 가진 270만 유료 고객과 30만 셀러를 통해 이커머스 업계의 강자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신세계가 얻은 셈이다.

강희태 롯데그룹 부회장(유통BU장)은 이베이코리아 인수 무산 이후 사내망을 통해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 지분 투자 등의 기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M&A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피력하고 있는 것에 비해 과감한 결단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2017년에는 SK와 11번가 지분 인수를 위한 협의를 진행했지만 무산됐고, 2019년에는 티몬 인수를 위한 세부 협상에 들어갔지만 불발됐다. 올해도 W컨셉 인수전에서 최종 후보자에 올랐다가 중도 포기했다. 최근 M&A 시장에 나온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 인터파크와 가격 비교 플랫폼 다나와의 인수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이커머스 분야에서 롯데의 행보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해 미도파, 한화마트, 우리홈쇼핑 등 기업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몸집을 불려왔던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롯데는 유통 영역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2006년 우리홈쇼핑을 인수하며 홈쇼핑이라는 또 다른 유통 채널을 갖추는 데 성공했고, 9년 전에는 과감한 투자로 하이마트를 인수하면서 가전업계에 본격 진출했다. 최근 실적은 주춤하지만 롯데홈쇼핑과 롯데하이마트는 그동안 그룹 내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며 롯데를 든든히 뒷받침해 왔다.

롯데는 푸드온 등 롯데ON의 신사업을 통해 이커머스 확장 의지를 피력 중이지만, 브랜드 인지도를 기반으로 한 오프라인 문법을 계속 지향해 나가겠다는 모습이 더 부각된다. 지난해부터 롯데는 백화점, 마트, 슈퍼, 롭스 등의 매출이 나오지 않는 점포를 과감히 정리하면서 실적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다. 2019년 830개였던 매장 수를 올해 6월까지 680개로 줄였다. 매출액이 줄어드는 대신, 영업이익이 개선되는 효과를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얻겠다는 것이다. 기존 백화점 점포를 소비자 취향에 맞는 체험형 공간으로 만드는 리뉴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리뉴얼 전담 TF까지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8월20일에는 롯데백화점 동탄점을 오픈했다. 롯데쇼핑이 7년 만에 새로 출점하는 백화점이다. 오프라인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구성하고, 젊은 소비자를 겨냥해 스포츠 매장과 식품관의 규모를 대거 늘렸다. 9월에는 의왕 프리미엄 아울렛 '타임빌라스'의 안착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커머스에 발을 들이면서도 오프라인의 영광을 놓지 못하는 롯데는 유통 강자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인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롯데는 코로나19가 종식된 후 고객들이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을 발전시켜가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커머스 후발주자니만큼 이커머스에서의 출혈경쟁을 자제하고, 슈퍼-마트-아울렛-백화점으로 짜인 오프라인 강자의 자리를 유지하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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