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포인트 사태로 나타난 유통가의 절박함과 조급함 [최승근의 되짚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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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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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히 확대되는 온라인 시장 선점 위한 제휴 경쟁 심화
검증 보다는 경쟁사 보다 한 발 빠른 속도에 초점
단 시간 내 몸집 불릴 수 있게 한 배경으로 작용
머지포인트 이용자 수백명이 머지플러스 본사에 몰려들어 환불을 요구하고 있다.ⓒ뉴시스
[데일리안 = 최승근 기자] 1976년 발표된 윤오영의 수필집 <방망이 깎던 노인>에는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차 시간이 급한 화자가 방망이를 깎는 노인을 재촉하자 노인이 한 말이다.

요즘 머지포인트 사태로 시끄러운 유통업계를 보면 이 문구가 떠오른다.

환불을 요구하는 수많은 소비자는 물론 이들과 제휴를 맺고 상품을 판매해온 이커머스, 사용처로 지정된 대형마트와 편의점, 외식 프랜차이즈 등 유통업계 전반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애초에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사업을 강행한 머지플러스 측은 물론 제대로 관리 감독에 나서지 않은 금융당국도 잘못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이를 판매한 이커머스와 제휴를 맺고 사용처로 등록한 유통 및 외식기업들은 우리도 피해자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온라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유통가의 절박함과 조급함이 보인다.

누적 가입자 수 100만명을 앞세워 머지플러스 측이 제휴처를 확대할 당시 제대로 된 검증 과정을 거쳤다면 어땠을까.

물론 제휴를 맺는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머지플러스의 재무구조나 수익 구조 같은 내부사정을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과거에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가 없었던 만큼 이를 비교할 마땅한 대상을 찾기도 어려웠을 터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심정으로 조금만 여유를 갖고 검증에 나섰다면 이번 사태의 피해자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대기업 누가 가입했다고 해서, 유력 이커머스 업체들이 모두 판매한다고 해서 영업사원의 구두설명에 의지해 계약을 체결한 사례도 있다고 전해진다.

경쟁사 보다 한 발 빨리 신사업에 나서고 싶은 유통업체들의 조급함과 이를 통해 온라인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절박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작년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유통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다 보니 그간 유통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올 들어 이베이코리아를 비롯해 인터파크 같은 1세대 이커머스 기업까지 매물로 등장하면서 시장 판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시장 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과 소비 트렌드를 따라가려면 ‘눈 코 뜰 새 없이 달려도 모자라다’는 주장도 있지만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무작정 빠르게만 달리기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정확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안전하게 멀리 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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