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에서 구원투수로...유통가 컨설턴트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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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5.14. 오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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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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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포스트 코로나 먹거리 발굴 위해 외부 전략가 영입
데이터만 알고 현장은 모른다는 말은 편견
외부 기업과 협력하고 '라방'하며 직원들과 소통

유통환경이 급변하면서 컨설턴트를 임원으로 기용하는 유통기업이 늘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통업계는 순혈주의와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온라인 쇼핑의 부상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변화가 불가피해지자 미래 전략 수립을 위해 컨설턴트 출신의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추세다.


◇강희석·강성현 등 컨설턴트 출신 대표 활약
흐름을 주도한 건 이마트(139480)다. 이마트는 2019년 2분기, 창립 이래 첫 영업적자를 낸 후 그해 10월 베인앤컴퍼니에서 소비재·유통 부문을 담당하던 강희석 파트너를 대표로 영입했다. 회사 창업 26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최고경영자(CEO)로 들였다. 강 대표는 앞서 10여 년간 이마트의 경영 자문을 맡으며 창고형 매장 트레이더스와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편의점 이마트24, 온라인 쇼핑몰 SSG닷컴의 출범 등을 컨설팅하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강 대표는 부임 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월마트의 DNA를 도입해 삐에로 쇼핑·부츠·PK피코크 등 적자를 내던 전문점 사업을 청산하고, 이마트를 신선식품(그로서리) 중심의 점포로 개편했다. 그 결과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도 사상 처음 매출 20조원(연결기준)을 돌파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강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SSG닷컴 대표를 겸임하며 이마트의 온·오프라인 사업을 이끌고 있다. 그는 베인앤컴퍼니 출신으로 티몬 CFO(최고재무책임자)를 역임한 최영준 CSO(최고전략책임자)를 영입해 SSG닷컴을 네이버, 쿠팡과 어깨를 나란히 할 온라인 쇼핑몰로 키우는 중이다. 최근 △네이버와 2500억원 규모의 지분 교환 △여성복 온라인 쇼핑몰 W컨셉 인수 등 외부 기업들과의 협력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마트의 외부 인사 영입이 성공적으로 평가되자, 라이벌인 롯데쇼핑(023530)도 컨설턴트 출신 인재를 중용했다. 지난해 10월 헤드쿼터(HQ) 경영전략실장으로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출신 정경운 상무를 영입한 데 이어, 11월엔 같은 컨설팅 회사 출신인 강성현 롯데네슬레코리아 대표를 롯데마트 사업부장(대표)으로 임명했다.

강희석 대표 부임 후 ‘미래형 점포’로 선보인 이마트타운 월계점 그로서리 매장.

앞서 헬스앤뷰티 스토어(H&B) 롭스를 안착시키고 롯데네슬레코리아의 흑자 전환을 이끈 강 대표는 롭스를 마트사업부로 통합하고 점포를 효율화하는 등 체질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또 점포를 물류거점화해 롯데쇼핑 통합 쇼핑몰인 롯데온과 시너지를 내는 전략도 추진 중이다. 롯데쇼핑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강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롯데쇼핑이 마트사업부 수장을, 그것도 외부 인사를 등기임원에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애경그룹의 역대 최연소 대표에 오른 김재천 AK플라자 대표도 액센츄어와 휴먼컨설팅그룹(HCG) 출신이다. AK홀딩스(006840)인사팀장, 제주항공(089590)경영본부장을 거치며 인사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그는 취임하자마자 스마트 오피스를 구축했다. 속도와 유연함을 무기로 AK플라자를 지역 밀착형 백화점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작년 말 GS홈쇼핑(028150)에 영입된 박솔잎 GS홈쇼핑 경영전략본부장(전무) 역시 베인앤컴퍼니 출신이다. 이베이코리아, 삼성물산 등을 거친 그는 전자상거래 전략 및 신사업 발굴을 담당하고 있다.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을 앞둔 의류업체 F&F(007700)도 지난달 베인앤컴퍼니·AT커니 출신의 박의헌 대표를 선임했다. 이 회사는 오는 5월 패션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해 신설법인(F&F)을 세우고 존속법인은 지주사 역할을 할 F&F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할 예정이다. 메리츠화재 부사장과 메리츠금융지주 대표, KTB투자증권 대표 등을 거친 박 대표는 그룹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투자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새술은 새부대에"...'데이터+트렌드'로 새판 짜는 전략가들
'코치' 역할을 하던 컨설턴트들이 유통기업들의 '구원투수'로 모셔진 이유는 온라인 쇼핑의 성장과 코로나19 위기에 맞서 '새판'을 짜는 게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유통업계 주도권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디지털 전환이 중요해지자, 이를 과감히 추진할 적임자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하는 쿠팡 김범석 의장, 마켓컬리 창업자 김슬아 대표 등은 컨설팅 업체를 다니다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해 각각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을 앞세워 유통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김슬아 대표의 경우 지난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계열사 CEO들과 진행한 포럼에 초청돼 성공 노하우를 나누기도 했다.

김재천 AK플라자 대표는 작년 연말 직접 피아노 치는 영상을 회사 게시판에 올리고 “힘내자”고 응원해 화제를 모았다.

컨설팅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 노하우가 중요했던 오프라인 시대와 달리 온라인으로 쇼핑 주도권이 넘어온 지금은 기술 혁신에 기반한 전략 수립이 중요하다"며 "컨설턴트들은 신입 때부터 CEO들과 대면하며 오너 관점에서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해 왔는데, 이것이 장점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이에 최근엔 실무자급으로 컨설턴트를 영입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고 했다.

기존 사업의 구조조정을 수행하기에 외부 인사가 적합하다는 분석도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수십년간 회사에 몸 담은 임원의 경우 동료·후배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정리하기 어려운 입장"이라며 "이마트가 적자를 내던 전문점 사업을 과감히 접을 수 있던 것도 외부 인사인 강희석 대표가 추진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외부 인사는 현장 감각이 떨어지고, 충성심이 부족해 기존 경영진과 마찰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이 혁신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추세인 만큼, 과거에 비해 외부 인사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는 게 기업들의 중론이다. 오히려 탁월한 소통력으로 조직문화를 바꾸는 이들도 있다. 김재천 AK플라자 대표는 피아노를 치는 영상을 회사 게시판에 올리거나, 취임 100일 기념 라이브 방송(라방)을 진행하며 직원들과 소통해 화제를 모았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통환경이 급변하면서 제 3자의 시각으로 조직을 바라보고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해 졌다"면서 "기존 조직과 융화하며 구조를 개선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은영 기자 key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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