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이베이코리아, 쿠팡, 네이버 외국 기업도 두 손 든 한국 엄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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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06. 오후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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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2021년 초 미국계 한국씨티은행의 한국 철수설이 불거졌을 때다. 한 사모펀드 대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한국 정부의 규제를 문제 삼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그의 답은 의외였다.

“요즘은 한국 시장이 외국보다 훨씬 빨리 변합니다. 국내 기업 경쟁력도 높아졌고요. 외국자본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손들고 나가는 거죠.”

최근 이베이코리아가 경영권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 이베이 본사는 한국 시장 진출 21년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이들이 두 손 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걸까.

한국 떠나는 이베이

이베이코리아는 지금도 국내에서 잘나가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이다. 미국 이베이는 2000년 한국 시장에 진출해 오픈마켓 옥션과 G마켓을 연이어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이베이코리아는 이 온라인 백화점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연결해주고 돈을 번다. 예를 들어 판매자가 G마켓에 물건을 등록해 소비자에게 팔면 판매액의 10%가량을 수수료로 뗀다. 거래액 1만원당 매출액 1천원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베이코리아의 2020년 매출액은 1조3천억원, 영업이익은 850억원이다. 거래액이 연간 20조원에 달해 10% 남짓 수수료만 받아도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선다. 특히 16년 연속 영업흑자를 달성했다.

문제는 성장이다. 국내 소비시장의 온라인 거래액은 최근 3년 사이 76% 늘었다. 반면 이베이코리아의 매출액 증가율은 같은 기간 37%에 그쳤다. 시장이 성장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국내 1위이던 이베이코리아의 온라인 거래액과 시장점유율 순위도 2020년 3위로 내려갔다.

이베이 밀어낸 쿠팡의 속도

이베이코리아를 밀어내고 국내 시장의 1위와 2위로 올라선 것은 네이버와 쿠팡이다. 비결이 뭘까? 속도와 가성비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한국 엄지족에게 제대로 먹혔다. 주문 다음날 배송을 완료하는 빠른 속도는 이 회사의 직매입(사입) 덕분이다. 쿠팡은 오픈마켓 거래 중개뿐 아니라 물건을 직접 사들여 창고에 쌓아놓고 배송하기도 한다. 쿠팡의 2020년 거래액 22조원 중 절반가량이 직매입 거래로 추정된다. 도심 곳곳에 창고를 짓고 직접 배송하니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직매입은 판매액 전체가 매출로 잡힌다. 쿠팡이 직접 재고 부담을 지는 만큼 1만원짜리 상품을 팔면 1만원을 매출액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2021년 쿠팡의 매출액은 14조여원으로 3년 전보다 400% 넘게 늘었다. 쿠팡은 2010년 설립 이래 한 번도 영업 흑자를 내지 못했다. 재고 관리와 물류비용, 막대한 투자 부담 때문이다.

그러나 쿠팡은 미국 증시에 상장하며 이베이코리아의 예상 매각가격(5조원 내외)을 훨씬 웃도는 약 68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매출 증가 속도가 배송만큼이나 빠르다는 것이 시장에서 후한 평가를 받은 배경이다.

가성비 앞세운 네이버

시장점유율 1위 네이버의 무기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소비자는 가장 싼 값에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가격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의 포털 사이트를 찾는다. 네이버는 ‘네이버쇼핑’ 검색으로 팔리는 상품의 거래 수수료를 판매액의 2%로 낮춰 최대한 많은 판매자를 포털로 끌어들인다.

최근 주력하는 것은 ‘스마트스토어’다. 소상공인이 네이버의 무료 프로그램을 이용해 네이버 포털 안에 자신의 온라인상점을 만드는 서비스다. 자영업자 창업을 지원해 네이버를 통한 온라인 거래와 결제, 광고 증가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네이버의 이커머스 사업 매출액은 2020년 1조1천억원으로 아직 회사 매출액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매출만 보면 쿠팡은 물론 이베이코리아와도 비교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 그러나 네이버의 연간 온라인 거래액은 27조원으로 국내 최대다. 쿠팡 못지않은 성장세를 보이며 잠재력을 입증한 셈이다.

이커머스 시장 변화 가속도

사실 이베이가 국외시장에서 물러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 아니다. 이베이는 2006년 중국 시장에서도 진출 4년 만에 사업을 접은 전례가 있다. 중국 현지 기업인 알리바바(타오바오)의 무료 수수료 정책에 밀려 시장에서 퇴각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속내도 이해할 만하다. 경쟁자 등장으로 성장에 한계가 찾아오자 제값 받을 때 발을 빼겠다는 의도 말이다.

이베이가 떠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경쟁은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시장에 매물로 나온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겠다며 롯데, 신세계, SK텔레콤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이 줄을 섰다. 쿠팡은 미국 증시에서 조달한 4조원을 투자 실탄으로 쓰겠다고 예고했다. 네이버는 전통의 유통 강자 신세계·이마트와 손을 잡았다.

시장 경쟁이 강화되는 건 소비자로서 반길 만한 일이다. 대세가 된 온라인 거래의 비용이 줄어들고 더 좋은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외국자본이 떠나간 자리에 남겨지는 사람들이다. 이베이코리아 직원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불안을 느낀다.

이베이코리아에선 현재 900여 명이 일한다고 한다. 곧 회사의 새로운 주인(최대주주)이 나타나고 경쟁사의 신규 투자로 전에 없던 일자리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빨리 변화하면 뒤처지는 이도 생기기 마련이다. 국내 시장 경쟁에서 패배한 외국자본이 발을 뺀 곳에 남은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pjo22@edaily.co.kr

2021년 3월 15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쿠팡 본사 앞에서 배달 기사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이 쿠팡의 음식 배달 플랫폼인 쿠팡이츠의 배달비 수수료 인하를 규탄하는 차량 전광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G9)의 매각전에 SK텔레콤까지 뛰어들면서 인수전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분당 사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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