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흔드는 사람들] ④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 “적자 기업에 과감한 투자 올해는 힘들다, VC도 이익성장률 높은 곳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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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3.21. 오전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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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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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자산 3년 만에 5200억…올해는 1조 목표
“시장 조정 불가피…이익 실현 가능성 잘 따져야
콘텐츠 직판하는 왓챠 같은 기업도 주목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이사는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 보기 드문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1990년대 말 대학생 신분으로 인터넷 기업을 창업하며 이른바 ‘닷컴 버블’을 몸소 겪었고, 미국계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서 고유계정 운용을 총괄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VC 심사역의 길로 들어섰다.

2018년 10월 하나벤처스의 설립과 동시에 대표이사로 영입된 그는 회사를 약 3년 반 만에 중대형 VC로 키워냈다. 설립된 지 3년 밖에 안 된 지난해 운용 자산(AUM) 5200억원을 달성했고, 올해는 1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AUM 1조원은 보통 대형 VC를 정의하는 기준이 된다.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이사. /하나벤처스 제공

업력은 길지 않으나 하나벤처스가 투자한 110여개 포트폴리오는 업계 상위권 수준이다. 지난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며 화제가 된 웹툰 플랫폼 타파스에 투자해 10배의 수익을 올렸고, 게임 업체 로얄크로우는 중국 빅테크 기업 텐센트에 인수됐다. 그 외에 최근 기업가치 1조6000억원을 인정 받은 전자책 및 웹툰 플랫폼 리디, 한우 유통 스타트업 설로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왓챠,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 등에도 초기 투자 했다. 세 차례에 걸쳐 투자를 주도한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사 디어젠,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 업체 뉴라메디, 올해 상장을 앞둔 큐로셀 등 제약·바이오 스타트업들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달 17일 서울 삼성동 하나벤처스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올해 스타트업 시장이 지난해와 같은 호황을 누리기는 어렵다며 이익 실현을 빨리 할 수 있는 기업에 선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까지 기업가치가 전반적으로 급등한 이커머스 영역에서는 플랫폼보다는 마케팅과 물류를 효율화할 수 있는 업체를 눈여겨볼 것을 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설립 후 실적은 어떤가.

“설립 2년차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3년차였던 작년에는 영업이익 90억원을 기록했다. 아직 역사가 깊지 않아 투자금을 완전히 엑시트(회수)한 건이 많지는 않다. 포트폴리오사 가운데 타파스가 지난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인수되며 10배의 수익을 냈고, 전자책 리더(리디북스)뿐 아니라 웹툰·웹소설 사업도 하고 있는 리디의 지분 가치가 4배 쯤 됐다. 웹툰 업체인 상장사 키다리스튜디오(020120)가 인수 자금을 전환사채(CB) 형태로 모집할 때도 투자해 2배의 수익을 냈다.”

운용 자산(AUM)은 총 얼마나 되나.

“5200억원이다. 올 상반기 안에 8500억원 달성이 가능할 것 같다. 운이 좋게도 매년 성장사다리펀드(KDB산업은행 등이 출자해 조성하는 펀드로, VC의 벤처 펀드에 재출자된다), 모태펀드(정부 부처에서 출자해 조성하는 펀드)의 출자 대상 VC로 매년 선정됐다. 또 벤처 펀드를 결성할 때 조성액의 20~30%에 해당하는 민간 출자자(LP) 몫을 유치하는 데 있어 하나금융그룹 관계사들이 도움을 준다. 아무래도 그런 이점 덕에 신생 VC임에도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형 금융지주 계열사라는 이유 만으로 이 정도 성장이 가능했을까.

“요즘 금융지주나 대기업 계열 VC가 많이 생겼지만, 우리처럼 빨리 성장한 곳도 있고 그렇지 못한 곳들도 있다. 우리 회사는 설립됐을 때부터 VC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았고, 계열사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벤처캐피털리스트들로 멤버를 꾸렸다(김 대표 자신도 소프트뱅크벤처스 이사였다).”

VC업계에 오기 전에 어떤 일을 했나.

“대학교를 다니던 1999년(연세대 전기공학과 졸업) 창업을 했다. 소프트웨어를 따로 설치하지 않고도 웹브라우저상에서 구동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지금의 구글앱스 같은 개념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서비스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갔는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직원도 30명 정도 채용하고 2000년에 투자도 받으며 나름 규모 있게 운영했다. 그런데 투자를 받고 바로 다음 달 나스닥지수가 폭락했다. IT버블이 붕괴된 것이다. 결국 회사를 나와 2001년 말 증권사에 입사했다. 짧은 창업이었지만 창업 후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금융 업계 사람들과 많이 소통할 수 있었다. 내겐 소중한 경험이다.”

IT버블 붕괴를 경험했고 증권업계에도 몸 담은 사람으로서 최근 증시 급락을 어떻게 보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세계 주식시장은 중간 중간 조정을 받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우상향했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과도하게 풀었던 유동성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단계다. 14년 간 그래왔듯 시장이 유동성 축소 때문에 일시적으로 조정 받더라도 결국 다시 상승할 수밖에 없다. 작년 하반기와 비교해 코스피지수가 10% 가량 하락했지만, 이를 두고 크게 떨어졌다고 표현하며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주가지수의 10% 하락은 상당히 큰 조정 아닌가.

“단기간에 하락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위험자산 투자자의 관점에서 10%는 그리 큰 등락폭이 아니다. 보통 기대 수익률 10%면 주가수익비율(PER) 10배에 해당되는데, 구글 같은 성장주의 PER은 30배나 된다. 투자자들은 성장주의 경우 PER 30배까지는 적정한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라고 인식하지 않나.”

그렇다면 올해 스타트업 투자 환경은 어떨까.

“주가지수의 10% 하락을 ‘폭락’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정을 받은 것은 맞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유동성이 완만하게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VC 입장에서도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재조정해야 하는지.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과감성을 조금 낮춰야 할 것이다. 닷컴 버블 때는 ‘인터넷’이라는 단어만 붙여도 기업가치가 솟았고 최근에는 ‘메타버스’와 엮이면 즉시 급등했지만, 그 정도의 과감한 투자는 이제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리스크에 대한 VC들의 선호도가 작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잔치는 끝났지만, 집에 가지는 말고 다음 잔치를 제대로 준비해야 할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오른쪽)가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연주 플리옥션 대표(왼쪽)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벤처스 제공

올해는 어떤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이익 성장률이 높은 회사에 투자해야 한다. VC는 대부분 미래를 보고 현재 적자가 나는 회사에 투자하는데, 이제는 해당 스타트업이 몇 년 후 이익을 얼마나 낼 수 있을 지 고민해봐야 한다. 흑자 전환을 위해 각 스타트업이 세우는 계획을 좀더 까다롭게 보고 검증해야만 한다.”

이익을 잘 낼 수 있는 회사를 어떻게 알아보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경우 창업자와 경영진이 어떤 사람들인지 많이 본다. 나는 사업이 성공할 때까지는 일에만 집중하는 창업자를 좋아한다. 크게 성공하는 창업자는 대체로 사생활이 많지 않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기 까지는 거기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마치 학창 시절에 공부 잘하는 친구가 수능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놀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스타트업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다. 이익을 내거나 비전을 실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창업자가 대체로 성공한다.”

하나벤처스는 콘텐츠 영역의 투자 강자다. 올해 콘텐츠 스타트업의 전망은 어떤가.

“보통 처음에는 콘텐츠를 창작하는 곳이 각광 받다가 시간이 지날 수록 콘텐츠를 파는 ‘플랫폼’이 주목 받는 것 같다. 지금은 창작의 영역, 플랫폼의 영역 모두 성장 및 투자 기회가 남아 있다고 본다.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는 플랫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디즈니플러스’가 대표적인 예다. 커머스 업체 중 자기 상품을 다른 플랫폼에서 팔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업체들이 있지 않나. 나이키나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 유칼리투스 나무 섬유나 사탕수수로 신발을 만드는 ‘올버즈’ 등이 그렇다. 디즈니는 콘텐츠 업계에서 온라인 D2C 매장을 연 것이다. 디즈니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려면 디즈니플러스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도 비슷한 사례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가진 플랫폼이 성공할 수 있다면, 결국 디즈니나 넷플릭스 같은 대기업만 살아남게 되는 것 아닐까.

“대기업이 아닌 회사에도 아직 기회가 열려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왓챠라는 토종 콘텐츠 플랫폼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지 않나. 동영상 공유 플랫폼은 이미 ‘유튜브’가 독점한 영역이 됐지만, OTT 분야에서 넷플릭스의 위상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넷플릭스 대신 티빙이나 웨이브를 보는 사람도 많다. 아직 독점적 시장이 아닌 만큼 성장 기회도, VC의 투자 기회도 남아 있다고 본다. 새롭고 참신한 포맷의 콘텐츠를 들고 나온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짧은 영상에 특화된 틱톡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듯 말이다.”

가상자산 분야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투자할 계획이 있나.

“올해는 그 쪽에도 투자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라고 본다. 요즘은 NFT(대체불가능토큰) 관련 기업들을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다. 실제로 콘텐츠뿐 아니라 이커머스 업체 가운데 NFT 사업을 하려는 회사들이 많다. ‘롤렉스’ 등 명품을 조각 구매하는 바이셀스탠다드 같은 회사도 NFT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은 NFT 관련 보안 업체들이다. NFT 시장이 성장할 수록 보안 업체의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NFT 플랫폼이 해킹당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지 않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성장한 이커머스 분야는 어떨까. 올해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

“요즘은 이커머스 플랫폼보다는 이커머스를 효율화하는 사업에 관심이 많다. 소비자 데이터를 잘 분석해서 이커머스 기업 매출을 늘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나 배송을 효율화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제공하려는 기업들이 많다. 최근 투자를 승인한 ‘스토어링크’라는 회사도 그런 일을 한다. 스토어링크는 오픈마켓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적은 비용으로 마케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많은 이커머스 업체가 이른바 ‘빠른 배송’ 때문에 계속 적자를 내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물류를 빠르게 효율적으로 배송할 방법을 찾는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오를 수밖에 없다.”

하나벤처스가 세운 올해 목표는.

“작년 한해 동안 3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새로 만들었다. 곳간이 든든해진 만큼 올해는 250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것이 목표다.”

VC 업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지난해까지는 ‘올라타기’만 해도 기업가치가 올랐던 시장이라면, 이제는 기업 간 차별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나만의 투자 방법과 전략을 만들기에 좋은 시기가 왔다고 본다. 최근 주식시장의 조정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과거 조정 및 폭락기를 겪었던 선배들과 많이 대화해보며 ‘변하지 않는 투자 법칙’이 무엇일지 공부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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