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탑 티어’ 개발자가 한국 스타트업에 합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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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20. 오후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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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구현서 클래스101 신임 CTO
아마존에서 원클릭 결제서비스 개발 참여
반년 넘는 “같은 꿈꾸자” 설득에 넘어가


구현서 클래스101 CTO가 지난 9일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온라인교육 스타트업 클래스101은 7월 27일 구현서 전 몰로코 한국대표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구 전 대표를 영입하면서 CTO 자리를 만들었다.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고지연 클래스101 대표는 “업계에서 주목받는 전문가인 구현서 CTO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키워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 CTO의 이력을 보면 이유 없는 기대감이 아니다. 구 CTO는 지난 2012년부터 5년 동안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해외 직구에 꼭 필요한 환전 서비스를 개발했다. 또 2016년엔 실리콘밸리의 애드테크 기업 ‘몰로코’로 옮겨 광고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업체는 지난 5월 1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에 등극했다.

이력이 화려한 만큼, 클래스101 행은 이례적이다. 2019년 클래스101은 시리즈A 라운드에서 120억원을 유치했을 만큼 잠재력은 인정받지만, 구 CTO가 몸담았던 곳에 비하면 기업 규모는 크지 않다. 아마존과 몰로코가 테크 기업이라면, 클래스101은 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텐트 기업에 가깝다. 클래스101은 왜 구 CTO를 원했고, 구 CTO는 왜 모험을 선택했을까.

이런 물음에 구 CTO는 “일단 회사를 충분히 알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보름여 간의 상견례를 끝낸 구 CTO를 [이코노미스트]가 만났다.

Q : 한 달간 어떤 일을 했나.
A : 사람 공부를 했다. 한 명씩 만나 이야기하면서 어떤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고, 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꿈을 이룰 수 있을까를 파악하고 지냈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서로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A를 말했을 때 A로 받아들여지게 하려면 서로 잘 알아야 한다.

Q : 한국에선 보통 술자리에서 파악하는데.
A : 마다하진 않는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평상시에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가능하다고 본다. 신변잡기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도 1대 1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속 깊은 말이 하나씩 나온다. 한국에 있다가 미국 아마존으로 넘어갔을 때 가장 크게 느꼈던 차이점이 1대 1 면담 문화였다.

Q : 1994년생 대표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A : 격식 없는 분위기다. 수평적으로 일하자는 사람끼리 모인 곳이라 그런 것 같다. 오픈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단 점에서 실리콘밸리보다 앞서나가는 면도 있다. 직원들이 작은 일이라도 사내 게시판에 올려 공개적으로 논의한다. 처음엔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최대한 발맞추려고 한다.

Q : 5년 주기로 소속을 옮기는 것 같다.
A :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사실 지루함을 빨리 느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한 곳에서 2년이면 지루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마존은 2년마다 한 번씩 부서를 옮겨준다. 그래서 2016년까지 5년간 있었다. 그러다 학교 친구들끼리 뭉쳐 애드테크 스타트업인 ‘몰로코’를 만들었다. ‘안 그래도 뛰어난 친구들인데, 나까지 가면 더 좋겠는데?’란 마음으로 참여했다.

Q : 지루해질 때쯤 클래스101에서 제안이 왔나.
A : 원래는 옮길 생각이 없었다. 클래스101에서 처음 이야기를 꺼낸 건 올해 초였다. 그런데 서두르지 않더라. 같이 시간 맞춰 농구도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러면서 ‘같은 꿈을 꿔 달라’는 말을 하더라. 그래서 CTO라는 자리를 만들고, 비워놨다고 했다. 그런 접근이 마음을 움직였다. 급한 일을 막으려고 저를 찾았다면 거절했을 거다.

Q : 어떤 꿈을 말하던가.
A :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살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플랫폼이 필요하니 만든 것이 클래스101이었고, 지금까지 사람이 한 땀 한 땀 콘텐트를 기획하고 제공해왔다. 그런데 이제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이런 콘텐트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Q : 비전 없는 스타트업은 없지 않나.
A :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 ‘경영진이 미쳐있는가’를 가장 먼저 본다. 꿈이 크고, 꿈만 보고 질주하면 시장 1등 같은 성과는 뒤따라온다. 다만 그러다 보면 놓치고 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채워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클래스101 창업 멤버들은 열 번이나 실패했다더라. 정말 마지막으로 해보자고 만든 게 클래스101이었다. 그 이야기 듣고 ‘정말 미쳐있구나’라고 느꼈다.

Q : 어떤 점을 채워줄 수 있다고 보나.
A : 비즈니스가 커지다 보면 우선순위 고민 없이 확장하기 쉬운데, 그 점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열 번 실패했던 역사에서 진정성 봤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클래스101 사무실 내부 모습. [사진 클래스101]

Q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A : 아마존은 스스로 ‘지구상에서 가장 소비자 중심적인 커머스’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다. 예를 들어 원클릭 결제에 통화 환전 서비스까지 넣는 작업을 제가 맡았다. 은행이 가져가던 환전 수수료를 우리가 가져가자는 목적이었다. 결제액의 1%만 가져가도 수백만 달러를 추가로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전에 한 번 개발했을 때 결제에 걸리는 속도가 0.1초 안쪽으로 느려졌다. 그래서 서비스를 취소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당장의 이익 때문에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우선순위가 분명하단 뜻도 된다.

Q : 클래스101에 적용해보자면.
A : 매칭 프라블럼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 어딘가에는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콘텐트가 있다. 그런데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니 찾긴 어렵다. 나도 이런 막막함 때문에 한국에서 10년 일하다가 유학을 결심했다. 결국 기술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머신러닝 기술을 도입해서 수강생과 크리에이터(선생님)를 매칭해주는 것이다. 제가 주로 다루고 싶은 건 이 문제다.

Q : 인력 효율화 고민도 있다고 들었다.
A : 강의 하나를 기획·운영하는 데 인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홍보해주고, 영상을 올려주는 역할이 있는데, 각각을 조금씩 자동화해나가야 할 거다. 예를 들어 크리에이터가 쉽게 쓸 수 있는 편집 툴을 제공하고, 크리에이터가 영상을 올리면 클래스101은 리뷰만 해주는 식이다. 이렇게 기술지원을 늘리면, 섭외 가능한 크리에이터 수도 늘 거다.

Q : 영입 발표 때 고지연 대표가 직접 기대감을 밝혔다. 이에 답을 준다면.
A : 들어오기 전에 물었다. ‘이런저런 비즈니스 개발하고 싶을 거고 내가 오면 더 빨라질 거라고 기대할 거다. 그런데 내가 오면 더 느려진다. 기다릴 수 있겠나.’ 빠르게 달리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다시 챙겨야 하므로 당장은 느려질 수밖에 없다. 대신 2년 뒤에 보면 성장이 빨라졌다고 느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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