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법 1조, 조세 형평성·부동산 안정 규정… 달성 못 하고 괴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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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28. 오후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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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이 만난 사람] 노무현 정부 종부세 도입 때 비판, 노영훈 전 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

노영훈 전 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은 “기본적으로 세금이 지속 가능하려면 예측 가능하고, 과세 대상자층이 두꺼워야 한다. 세금 감액 대상자와 중과 대상자가 많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종합부동산세는 과세 대상자를 너무 좁게 만들어 놓았다. 1주택자가 까딱 잘못하면 2주택자가 돼 세금을 두들겨 맞는 식이다. 날카로운 면도날 위에 납세자를 세워 놓고 있다”고 말했다./이태경 기자

종합부동산세가 처음 시행된 2005년, 3만6000명이 총 392억원을 냈다. 올해는 94만7000명이 5조6789억원을 내야 한다. 대상자는 26배, 세금은 145배가 됐다. 종부세 16년 동안 전국 아파트 가격은 2배, 서울 아파트 가격은 2.2배로 뛰었다(KB부동산통계). 종부세가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국민 98%는 종부세 청구서 받지 않는다” “주택 가격이 26억원이어도 1가구 1주택이면 쏘나타 자동차세보다 적다”고 한다. “여유 있는 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은 다른 말을 한다. “2%는 국민 아니냐” “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을 왜 세금에 전가하느냐”고 항변한다.

노영훈 전 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은 26일 “종부세가 괴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종부세 도입 논의 당시 조세연구원(현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원 신분으로 종부세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2005년에는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종부세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가 ‘직위해제 3개월, 1년간 언론 인터뷰 등 대외 활동 금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종부세가 괴물이라니.

“본질을 잃어버렸다. 조세 체계가 아니라 정치 프레임이 됐다. 모든 세법 1조에는 세금의 목적이 규정되어 있다. 종부세법 1조를 보자.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 안정을 도모한다고 쓰여있다. 종부세로 형평성이 높아졌나, 부동산 가격이 안정됐나. 두 가지 모두 달성하지 못했다.”

-종부세가 많이 늘었다.

“상식적인 정부라면 조세 저항 가능성을 우려해 과세표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급하게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과세표준 현실화라는 정책 목표에 너무 매몰됐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90~100%로 끌어올려 과표를 현실화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자산 시장도 주식 시장처럼 오르내림이 있는데, 그걸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부세를 보면 해당 연도 1월 기준으로 주택의 가치를 측정하고 6월에 누가 보유하고 있는지 파악해 부과한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6월 가치로 세금을 매겨야 하는 것 아닌가.”

11월 23일 서울 강남우체국에서 배달을 기다리는 종합부동산세 고지서.연합뉴스

-어쨌든 국민 2%만 낸다는 숫자는 맞지 않나.

“공무원들이나 학자나 어떤 숫자가 주어지면 그 숫자를 자기 의도대로 쿠킹(cooking·요리)할 수 있다. 2%는 갓난아이까지 분모에 넣은 숫자다. 전국 가구 수로 따지면 4%, 주택 가진 가구 기준으로는 8%다. 더구나 국민 2%면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해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0.01%도 부당하게 곤경에 처해서는 안 된다. 형법에도 무죄 추정 원칙이 있지 않은가. 과연 그 사람이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쳤나, 그 사람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나. 그걸 어떻게 알고 세금을 무겁게 매기나.”

-다주택자 중과는 설득력 있지 않나.

“30억원짜리 주택 한 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15억원짜리 주택 2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교해 보자. 뒤의 사람은 30억원을 나눠서 15억원짜리 한 채에는 자기가 살고, 다른 15억원짜리를 세를 준다. 이것이 비난받아야 할 문제인가. 어차피 임대소득은 따로 세금을 낸다. 15억원짜리 하나를 전세 주고 있는 그 사람들이 임대주택을 공급해 국가 경제에 더 도움을 주는 사람들 아닌가.”

-2주택자가 집을 팔면 되지 않나.

“팔기가 쉽나. 정부가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자꾸 3기 신도시 크레인(기중기)이 올라가는 것을 두고 공급이 충분하다고 세뇌하려 한다. 그런데 신규 주택 공급은 전체 공급의 극히 일부분이다. 공급의 90% 이상이 기존 중고 주택 거래다. 양도소득세를 많이 매겨 공급을 줄여버린 것이 현재 조세 체계다. 시장을 살리는 세제가 나와야 한다. 무엇이 공급 장애 요인인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재산세와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다는 통계가 있다(정부는 2019년 기준 GDP 대비 보유세가 0.9%로 OECD 평균인 1.1%보다 낮다고 한다).

/자료=국세청

“그 통계는 따져봐야 한다. 한국은 재산세가 수많은 지방세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경우 세목이 달랑 재산세 하나밖에 없는 주(州)가 많다. 자동차 취득할 때 세금 한 번 내지, 매년 내는 자동차세도 없다. 미국의 경우 재산세 부담이 커도 이를 재원으로 여러 행정 서비스를 받지만, 우리는 재산세를 내도 특별한 서비스가 없다. 그리고 자산 가격을 1년에 한 번씩 평가해 세금 올리는 나라는 선진국 중 한국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단일 규격 아파트가 많아 평가가 수월하고, 그렇지 않은 외국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많은 곳은 매입 당시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고, 영국은 5년에 한 번씩 자산 가격을 평가한다.”

-정부의 부동산 평가가 적정하지 않다는 것인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나온다.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세금을 걷기 위한 자산 평가에 가장 모범적인 국가가 덴마크다. 지자체가 납세자와 몇 차례 주고받은 뒤에 공시가격을 매긴다. 한국 방식대로 과세 평가를 무모하게, 달랑 엽서 한 장에 통보하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덴마크의 경우 1년에 평가액이 몇 배 올라가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정부가 평가한 금액이 자신 있으려면 정부가 그 가격에 재산을 사 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가. 급격하게 과표가 오르고 세금이 오르면 국민은 그걸 못 받아들인다.”

-종부세는 애초 설계가 잘못된 것인가.

“종부세를 도입하면 1가구 1주택자의 납세 능력 범위를 넘어서 강한 조세 저항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처음 종부세를 걷기 전에 청와대에서 회의를 했는데 ‘준비가 부족하니 빈 구멍을 메운 후에 시행하는 게 좋겠다’고 건의한 적이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발 하나 들여놓고 조금씩 바꿔 나가자’고 하더라. 설계도 잘못됐지만 운영도 잘못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연합뉴스

-운영이 잘못됐다니.

“종부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주택 지분율이 20% 이하이면 보유 주택 수에서 제외해 종부세 중과 대상에서 빼 준다. 그런데 올해부터 달라졌다. 부모가 주택 한 채를 공동으로 가지고 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자. 3형제가 아버지의 주택 지분 50%를 각각 20%, 15%, 15%씩 나눠 상속했다. 그럼 둘째 아들은 주택 전체의 15%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작년까지는 15%니까 보유 주택으로 안 쳤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당신은 아버지 상속 지분 중에서는 30%를 물려받았다’며 20%가 넘으니 주택 수에 포함된다고 통보했다. 내 주위에도 이와 같이 졸지에 2주택자가 되고, 종부세 부담이 커진 사람이 많다. 이런 식이니 앞으로 ‘나는 1주택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렇게 되면 앞으로 서울 사는 사람들은 시골 부모 집을 상속받지 않으려 할 거다.”

-부동산 관련 세율이 너무 높다는 말도 있다.

“정부가 속으로 ‘10억 아파트가 20억으로 올랐는데 그건 다 그야말로 불로소득 아니냐.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실패했다고 해도 결국 정부가 올려준 건데, 정부가 가져가는 게 맞지, 왜 떫냐’식으로 접근해 세금을 무겁게 매기겠다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 정도다. 양도세도 세율이 너무 높다. 최고세율이 75%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세금도 최고세율이 75% 가게 되면 세제라고 볼 수 없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없다.”

-정 힘들면 집 팔면 되는 것 아닌가.

“개인 거주지를 국가가 왜 간섭하나. 예를 들어, 배우자가 중병을 앓고 있고 하루 멀다 하고 투석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시골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살면 좋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지만, 그럴 사정이 아니지 않으냐. ‘내가 살아봤는데 강남에서 살 필요가 없다’고 단순하게 얘기하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종부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데.

“그런 논리가 어딨냐. 그렇게 말하려면 ‘국세청에 종부세를 내지 마시고요. 정부가 지정한 기부 단체에 종부세 금액을 내십시오. 연말에 세액공제 100%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종부세가 바뀔 가능성이 있나.

“단번에 바뀔 수 없을 것이다. 정권이 바뀐다 해도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종부세법을 존치시키려고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세 조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주택분 종부세는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 주거용 토지를 제대로 평가해서 토지에 국한된 종합부동산세 얼개를 다시 그려야 한다. 다만 토지에 대한 평가가 정확해야 한다. 예전 종합토지세는 평가가 정확하지 않아 실패했다.”

☞노영훈

1957년 서울에서 나서 중앙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25년 동안 일한 조세 전문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종부세를 비판했다가 직위해제 징계를 받았고, 노무현 정부가 물러난 2008년 초 “징계가 부당했다”며 소송을 내 3년 만인 2011년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2018년 퇴직 후에도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미국 링컨토지정책연구소가 진행하는 ‘아시아의 재산세’ 프로젝트 중 한국 부분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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