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부동산 요지경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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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17. 오후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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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땅꾼’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뱀을 잡는 사람들이었는데 거의 사라졌다. 이젠 부동산 시장에서 신종 ‘땅꾼’들이 활약한다. 개발 가능성 있는 땅을 찾아 부동산 디벨로퍼(시행사) 등에 소개해주는 전문업자를 속칭 ‘땅꾼’이라고 부른다.

27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도심속 재건축 단지와 아파트가 보이고 있다./뉴시스

▶원래 부동산 디벨로퍼는 남다른 아이디어와 안목으로 쓸모없는 땅에 가치를 불어넣어 사람들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선진국형 직업이다. 국내에 디벨로퍼 시대가 열린 건 IMF 외환 위기 이후다. 줄줄이 무너진 건설사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디벨로퍼로 변신했다. 과거엔 건설사들이 직접 은행 돈 끌어와 땅 사고 아파트 지어 팔았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돈 많이 들고 위험 부담 큰 ‘시행’에서 손 떼고 시공만 전담하면서 시행사·시공사 분업 구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전주(錢主)들로부터 돈 끌어와 땅 사 모으고, 정부 인허가받고, 부동산 개발 전체를 지휘하는 디벨로퍼가 본격 등장한 것이다.

▶디벨로퍼의 세계엔 명암이 분명하다. ‘한국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MDM그룹의 문주현 회장은 다니던 회사(나산그룹)가 부도나자 재취업을 하지 않고 1998년 서울 서초동에 월세 2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얻어 창업했다고 한다. 손대는 부동산 개발 사업마다 성공을 거둬 국내 굴지의 부동산 개발 업체를 일궜다. 반면 2000년대 초 서울 동대문에 초대형 쇼핑몰 건립을 추진하던 굿모닝시티 윤창열 대표는 분양 대금 3700여억원을 가로채고 회삿돈을 횡령하며 정치권에 뇌물 준 혐의 등으로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만기 출소 후에 또다시 사기 혐의로 수감됐다 지난해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했다.

/일러스트

▶부동산 호황기에 엄청난 숫자의 디벨로퍼가 생겨났다. 건설사 출신, 은행원, 공무원은 물론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 출신들도 있다. 별다른 학맥이나 직장 경력 없이 남다른 ‘부동산 감’을 가진 동네 유지나 주부도 디벨로퍼로 뛴다. 소규모 상가 건물만 잘 개발해도 상당한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 디벨로퍼들이 난립한다고 한다.

▶디벨로퍼는 큰 위험 부담을 지고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다. 실패하면 감옥 가기 십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장동 요지경은 그런 위험 부담 없이 일확천금을 챙겼다. 천문학적 돈을 챙긴 사람들은 그 돈으로 다시 서울 등 요지의 부동산을 사들였다고 한다. 부동산이 부동산을 만드는 부동산 요지경이다. 집값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되고, 전셋값 폭등으로 살던 집에서 밀려나게 된 사람들로선 혀를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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