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부동산 정책도 공약보다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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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6.02. 오전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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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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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분야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이 담긴 문서가 유출됐다.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라는 제목으로 ‘대외 주의’ 표시된 문서는 총 1170쪽으로, 작성 날짜는 2022년 4월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가 작성했다. 새 정부의 5년 밑그림인 국정과제 이행계획이 통째로 유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인수위는 3월18일 공식 출범 이후 50일간 국정과제를 준비했다. 국정과제 110개와 실천 과제 521개를 만들어 5월3일 발표했다. 이번에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는 110개 국정과제에 대한 개요 및 세부 내용, 연차별 이행계획과 같은 시간표, 압도적인 여소야대 정국에서의 입법 전략 등이 담겨 있다. 경제정책의 큰 틀은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각종 공약의 실현 방안을 엿볼 수 있다.

대통령실은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가 최종본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의 얼개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사IN〉 취재 결과, 일부 정부 부처는 이미 이행계획서 내용대로 중장기 로드맵을 그리거나 실무진을 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를 통해 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와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짚어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①추경: 윤석열 정부 1호 국정과제는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완전한 회복과 새로운 도약’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먼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재원은 59조4000억원 규모의 추경(추가경정예산)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역대 최대였던 2020년의 3차 추경(35조1000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를 보면, 윤석열 정부는 올해 하반기 추경을 한 차례 더 추진한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이 목적이다.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세운 ‘임대료 나눔제’가 법적 근거를 갖춘 때로 적혀 있다(〈사진 1〉 참조). 임대료 나눔제는 소상공인이 부담하는 임차료를 정부, 임대인, 소상공인이 분담하는 정책이다. 소상공인이 부담하는 임차료를 줄이고, 이에 따른 임대인 손실은 정부가 전액 보전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추경 규모는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윤 대통령은 임대료 나눔제 공약 발표 당시 예상되는 소요 재원은 50조원이라고 밝혔다. 하반기 추경이 추진된다면 그 규모는 5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추경안 편성 과정에서 세수 전망치를 수정했다. 올해 예산을 편성할 때 상정했던 세수 전망보다 53조3000억원이 더 들어올 것으로 전망했다. ‘빚 없이 추진하는 긴급 추경’의 근거다. 올해 하반기에 세금이 비슷한 규모로 더 걷히지 않을 경우 2차 추경을 위해선 국채 발행 등을 통해 빚을 내야 한다.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와 새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이 엇박자도 엿보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재정건전성’을 강조해왔다. 추 부총리는 5월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코로나19 재창궐, 대외 경제 쇼크 등 특이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올해는 추경을 더 편성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②부동산: 부동산은 20대 대선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부동산 정책 기조는 규제완화, 민간 주도 공급 확대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 정책을 지적하며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데 중심을 뒀다.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는 윤 대통령 공약보다 후퇴한 방안이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개정’의 이행 시기를 내년 상반기로 정했다(〈사진 2〉 참조). 안전진단 기준은 재건축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문재인 정부에선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했는데, 이를 완화하겠다는 게 공약의 핵심이다.

안전진단 규제는 국토교통부 시행령을 따르기 때문에 법 개정 없이 추진할 수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새 정부 출범 직후 관련 정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는 이행계획서를 작성하면서 내년 상반기로 시행 시기를 미뤘다. 재건축 기대감에 관련 지역 아파트값이 뛰자 속도조절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다른 부동산 핵심 공약인 ‘임대차 3법 폐지’도 속도를 조절한다고 나와 있다. 이행계획서에서는 8월 전후로 임대차 시장 동향을 집중 모니터링하고, 시장 혼선을 최소화하고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이루기 위해 임대차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고 적었다. 부동산 관련 대출규제 완화 공약도 이행계획 마련 과정에서 후퇴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시절 지역과 관계없이 담보인정비율(LTV) 70% 적용, 다주택자 LTV 상한 30~40%로 완화를 공약했다. 그러나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서는 생애 첫 주택 구입 가구 LTV 상한선을 60~70%에서 80%로 높이는 방안만 올해 안에 추진할 과제로 선정했다. 다른 규제는 “2023년 합리화 방안을 마련할 것”이고, “가계부채 및 주택시장 상황을 봐가며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하겠다”라고만 적었다.

다만 원희룡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 5월16일 취임식에서 공약 후퇴 논란을 일축했다. 그는 “내년 상반기에 어떻다는 건 저나 (추경호) 부총리를 통해 나오기 전엔 의미가 없다. 100일 이내에 세부적인 부동산 정책 구상을 발표하겠다. 구체적인 공급 방식과 규제완화 방안도 포함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③주식: 금융투자시장은 최근 명확하지 않은 국정과제 이행계획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주식 양도소득세(양도세) 전면 폐지 공약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양도세를 폐지하고 새로운 과세 체계를 설계하겠다고 주장했다. 양도세가 도입되면 외국인 투자자 등 소위 ‘큰손’ 유입이 줄고, 국내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리였다.

현행법상 주식 양도세는 국내 상장주식의 경우 종목당 10억원, 또는 지분율 1% 이상 보유 대주주가 납부하게 되어 있다. 다만 2020년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기본원칙에 따라 주식 양도소득에 대해 전면 과세 방침을 결정했다. 여야 합의로 법을 개정했고, 2023년 1월부터 대주주·개인투자자 구분 없이 5000만원 이상 주식 양도소득에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금융투자소득세). 이를 전면 무력화하는 게 윤 대통령의 양도세 폐지 공약이다.

다만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를 보면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 문건에는 “초고액 주식 보유자(종목당 100억원 이상) 이외의 주식 양도소득세는 폐지”라고만 적혀 있다. 현행법상 대주주가 내는 양도세를 폐지한다는 것인지, 2023년 시행되는 5000만원 이상 주식투자 수익에 대해 매기기로 한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대주주 기준 변경은 시행령 사안이라 이론적으로 법을 고칠 필요는 없지만, 양도세 전면 폐지·유예는 소득세법을 고쳐야 한다. 국회 기재위 소속의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확히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찬반 의견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 문건에는 공매도 관련 규제도 개선한다고 나와 있다. 개인이 공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릴 때 적용되는 담보 배율을 현행 140%에서 기관·외국인과 같은 105%로 조정해 형평을 맞추기로 했다. 다만 이는 그동안 개미 투자자들이 요구했던 방향과 다르다. 인수위 계획은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이지만, 개미들은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규제를 개인투자자 수준으로 강화하는 방향을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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