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유니콘 CFO가 말하는 ‘스타트업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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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6.02. 오후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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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비 숨기고 이익은 과장…‘J커브’ 허상
티몬·위메프·컬리…모두 기업가치 불안


“모 스타트업이 ○○○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스타트업 투자 유치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문장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아직 이익도, 심지어 매출도 거의 없는 스타트업 기업가치를 도대체 어떻게 매긴 걸까.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적자 상태였던 쿠팡과 겨우 막 흑자전환한 야놀자에 무슨 생각으로 조 단위 투자를 한 걸까.

한때 모 유니콘 스타트업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A씨에게 스타트업 몸값 계산 공식을 직접 들어봤다.



▶스타트업 몸값 계산 공식은

▷미래 이익 창출 능력 ‘상상’해서 베팅

“전통적으로 기업가치는 이익을 기반으로 매깁니다. 당기순이익이나 ‘에비타(EBITDA·감가상각 전 영업이익)’를 통해 현금흐름 창출 능력을 살피죠. 그런데 스타트업은 이익이 나지 않잖아요. 그래서 미래 이익 창출 능력을 ‘상상해서’ 기업가치를 매깁니다. 3~5년을 해도 상상이 안 되면 10년 후까지 내다보게 되죠.”

A씨는 흰 종이 위에 2차 함수 그래프를 그려가며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프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고정비와 ‘공헌이익’이다. 공헌이익이란 매출액에서 변동비를 뺀 금액이다. 이는 영업이익과 고정비를 더한 값과 같다. 즉, 공헌이익에서 고정비를 빼면 영업이익이 나온다. 고정비 그래프는 일정하거나 완만하게 상승하고, 총공헌이익 그래프는 가파르게 상승할수록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높아진다(그래프 ➊).

A씨 설명에 따르면 대부분 테크 기업은 ‘고정비가 일정하거나 매우 완만할 것’이라고 투자자를 설득한다. 플랫폼 기업은 인건비 외에는 고정비가 거의 안 든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총공헌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고정비 그래프와 간격이 벌어지고, “이를 통해 J커브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스타트업 투자 유치의 단골 매뉴얼이다.

유동성이 풍부했던 지난 수년간은 이 공식이 그럭저럭 통했다. 벤처캐피털 업계에는 투자 자금이 넘쳤고, 주식 시장도 호황이니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했다. 먼저 무료로 이용자 수와 거래액을 늘린 뒤 과금을 시작하면 서비스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이 순순히 비용을 지불, 수익이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A씨는 “공식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짚었다. 문제는 이런 공식을 업계 1위, 너그럽게 봐도 3위권의 스타트업에만 적용해야 하는데, 투자사 간 경쟁이 불붙으며 너도나도 J커브를 전제한 고밸류를 평가받게 됐다는 것.

“변동비 성격이 강한데도 고정비라고 우겨 투자를 받아낸 곳이 많았습니다. 가령 테크 기업은 거래액이 늘면 그만큼 개발자나 서비스 인력도 늘려야 하는데, 이런 인건비 증가 리스크를 간과했어요. 고정비는 사업 규모가 커져도 증가해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과거에는 스타트업 주장을 그대로 믿었는데, 이제는 ‘정말 고정비가 맞는지’ 뜯어보게 됐습니다.”

이익 전망도 재평가에 들어갔다. 공헌이익이 J커브를 그리며 급증하려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거나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 그런데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졌다. 45도 각도로 뻗어 나갈 것이라 기대했던 공헌이익 그래프 기울기가 30도에도 못 미치는 스타트업이 속출했다(그래프 ➋). 기울기를 높이려면 결국 고정비를 확 줄여야 했다. 인력 감축과 마케팅 축소가 대표적인 방법이다(그래프 ➌).

“제가 근무했던 모 유니콘도 고정비를 확 줄였어요. 그러자 적자가 줄고 이익이 개선됐죠. 하지만 차별화에 실패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투자를 줄였으니 오래 못 갈 수밖에요. 경쟁사를 쫓아가려면 다시 투자를 늘려야 했고, 다시 적자가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안타깝지만 그 회사는 망할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트업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지표인 PSR(주가매출비율)을 기준으로 동종 기업들과 비교한 결과,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야놀자, 컬리(마켓컬리) 등의 기업가치가 비교적 거품이 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세 기업의 본사 모습. (컬리 제공, 박형기, 이충우 기자)
▶멀티플도 결국 ‘꿈’이더라

▷거래액 기준 모호…수익성 증명해야

기업가치를 매길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멀티플(multiple·배수)’이다. 매출, 영업이익, 거래액, 에비타 등 경영 성과 지표에 몇 배를 곱해 기업가치를 산출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 업종, 비교 기업군, 점유율, 심지어 창업자의 협상력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다. 거래액도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확 늘리거나 줄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얼마나 꿈이 그럴듯한지를 나타내는 ‘PDR(주가 꿈 비율)’의 영역이다.

“쿠팡의 경우 상장 후 주가가 한창 치솟을 때는 기업가치가 거래액의 3배 이상도 매겨지더군요. 지금은 주가가 13달러대로 급락해 1배 수준으로 내려왔지만요. 1분기 호실적에 주가도 반등하고 있으니, 성장성만 잘 증명하면 당분간 거래액의 1.5~2배 수준에서 기업가치가 형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A씨는 티몬, 위메프, 컬리 등 다른 유니콘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티몬과 위메프는 시장을 독점해 이익을 창출하거나 지속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아직 주지 못하고 있어요. 양 사 모두 한때 거래액의 1배 정도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는데 지금은 많이 떨어졌을 겁니다.”

특히, 상장을 앞둔 컬리에 대해서는 상당한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컬리는 상장을 하더라도 4조원의 가치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기업가치를 낮춰 상장하려 해도 다음이 걱정이에요. 기업가치가 4조원일 때는 신규 자금 조달 규모가 1조원 정도 되겠지만, 2조원이면 5000억원 정도만 가능해요. 연간 적자 규모가 2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2년 후에는 또 돈 걱정을 해야 하는 거죠. 그뿐인가요. 상장 후 1년 내 수익화에 실패하면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상장을 철회해도, 밀어붙여도 모두 어려운 시나리오예요.”

상황이 이렇자 투자자들 태도도 급변하는 양상이다. 최대 10년 후까지 기다리겠다며 여유를 부리던 모습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계산기를 들이미는 분위기다.

“10년 넘게 이어져온 유동성 확장이 마무리되며 급격한 긴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prove profitability. today, not tomorrow(수익성을 증명해봐. 내일 말고 오늘)’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죠. J커브형 성장을 전제로 산정했던 기업가치를 이제는 1위 기업과의 점유율 격차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매겨야 한다고 봅니다.”

스타트업 몸값, 주가매출비율(PSR)로 따져보니

토스·야놀자·컬리 ‘버블’…두나무는 ‘양호’

스타트업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또 다른 핵심 지표는 PSR(주가매출비율)이다. 주가(기업가치)를 주요 경영 성과 지표인 매출액과 연계해서 평가하는 지표다. 회사 규모는 크지만 영업이익이 적은 스타트업 가치를 매길 때 보편적으로 쓰인다. 상장 직전 스타트업의 PSR이 같은 업종에 비해 높게 나온다면 일반적으로 그 스타트업은 ‘과대평가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유니콘 스타트업 PSR을 분석해본 배경이다.

현재 ‘증권플러스 비상장’ ‘서울거래 비상장’에서 거래되는 스타트업 중 추정 시가총액 규모가 가장 큰 기업은 핀테크 앱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다. 두 거래소에서 약 12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평가받는다. 프리 IPO에서는 최대 20조원까지 몸값이 거론됐다. 비바리퍼블리카의 지난해 연매출은 7808억원. 현재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가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PSR이 16~25배에 달한다.

현재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 평균 PSR은 0.4배에 그친다. 다만, 같은 핀테크 스타트업인 카카오뱅크는 바바리퍼블리카와 비슷한 수준이다. 카카오뱅크 시가총액은 13조원, PSR은 29배다(5월 25일 기준). 그러나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2500억원 넘는 건실한 ‘흑자’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비바리퍼블리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다음으로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은 암호화폐 거래소 ‘두나무’다. 장외 시장 추정 시가총액이 10조원에 달한다. 단, 두나무는 몸값에 비해 매출 규모가 크고 영업이익률도 매우 높아 ‘버블’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대세다. 이는 미국 시장에 상장된 ‘코인베이스’와 비교하면 두드러진다. 코인베이스는 상장 당시 PSR 7배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반면 두나무 PSR은 2.9배다.

몸값 3위 비상장 스타트업은 숙박 앱 ‘야놀자’다. 장외 시장 추정 시가총액은 8조7801억원으로, PSR은 27배다. 야놀자와 사업 모델이 비슷한 글로벌 OTA와 비교하면 현저히 높다. 부킹닷컴은 상장 당시 12~13배의 PSR을 적용받았다. 트립어드바이저는 7배, 익스피디아는 4~5배의 PSR로 몸값이 매겨졌다. 야놀자가 국내에서는 70%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평가다.

컬리는 전체 비상장 종목 중 몸값 10위에 해당한다. 한때 기업가치가 5조원까지 거론됐지만, 현재 장외 시장 추정 시가총액은 3조1908억원에 그친다. PSR은 2배 수준이다. 컬리와 비슷한 커머스 기업 쿠팡의 경우 상장 당시 PSR 5배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1~2배 사이를 맴돈다. 쿠팡도 주가가 급락한 상황에서, 쿠팡보다 시장점유율이 낮은 컬리가 비슷한 PSR을 적용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금융 투자 업계 중론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1호 (2022.06.01~2022.06.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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