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겨낸 스타트업]③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 “제주여행·랜선투어로 버텼다… 기술투자로 도약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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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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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 막히자 월예약 21만건서 1만건대로 ‘뚝’
매출 1% 제주여행으로 기사회생…현재 80%
“포스트 코로나 시대, 자유여행·장기체류 뜰 것”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기 시작한 지 2년이 흘렀다. 비대면(언택트) 수요가 커지며 오프라인 기반 스타트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기업은 버티다가 폐업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여행·모임·공연 등 코로나 최대 취약업종에서도 생존한 기업이 있다. 이들은 코로나에도 더 큰 도약을 꿈꾼다. 코로나 시대에서 생존한 스타트업 대표와 만나 ‘보릿고개에서의 생존법’은 무엇이었는지, 미래 계획은 무엇인지 세 편에 걸쳐 들어봤다. [편집자주]


2021년 12월 16일 서울 서초구 대륭서초타워 마이리얼트립 본사에서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가 어려운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꼭 2년 전인 2020년 1월 해외여행 상품을 주로 팔던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은 축제 분위기였다. 월 거래액 520억원을 찍으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동건 대표는 “이 기세대로라면 2020년 거래액이 1조원을 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런 부푼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적으로 확산하며 2월부터 예약건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해 4월에는 1만건대로 곤두박질쳤다. 이전까지 월 평균 예약건수는 21만건이었다. 코로나 최대 타격 업종의 현실이었다. 직원들은 이 대표만 쳐다봤다. 그는 전체 매출의 1%도 책임 못 지던 제주여행만이 마이리얼트립의 생존길이라고 생각했다. 국내 여행 중에서도 가장 해외여행스럽게 비행기를 타고, 며칠씩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5월에 제주 지사를 처음으로 세우고 본격적으로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약건수는 그의 짐작대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진행 중인 현재 제주여행은 마이리얼트립의 매출 가운데 80%를 책임지는 명실공히 주력사업으로 떠올랐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로 반짝 좋아지는 듯 했던 해외여행 수요는 최근 오미크론이라는 변이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다시 얼어붙었다. 전시 체제를 2년간 경험한 마이리얼트립은 이제 차분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코로나가 끝나면 자유여행, 장기체류 시장이 뜰 것”이라면서 “사업적으로 큰 기회인 만큼 여행자들에게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슈퍼 앱’이 되기 위해 기술투자를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021년 12월 16일 서울 서초구 마이리얼트립 본사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이 큰 업종 중 하나가 여행이다.

“코로나 확산 직전이었던 2020년 1월 마이리얼트립은 월 거래액이 52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2018년 연 거래액이 1240억원이었고, 2019년에 3600억원이었다. 매해 3배씩 성장했고, 이 기세대로라면 2020년 연 거래액 1조원을 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분위기가 엄청 좋았었다. 당시 코로나 이야기가 있었지만 2월까지만 해도 중국을 포함, 일부 아시아 국가에 한정될 국지적인 변수로 봤다. 하지만 3월 되니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을 선언했다. 2월까진 버틸 만 했는데, 3월부터 극적으로 예약건수가 급감하기 시작했다(하단 그래픽 참조). 4월에는 월 거래액이 1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520억원(2020년 1월)이 하루 아침에 10억원(2020년 4월)대로 빠진 것이다. 전시 상황에도 이런 숫자는 나오지 않겠다고 주변에서 말할 정도였다.”

―회사 분위기는.

“직원들은 경영진이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해했다. 당장 어떤 선언을 하기 전에 동종업계 대표들과 만나 의견을 나눴다. 당시엔 백신 얘기도 나오지 않았을 때라 ‘여름이면 끝날 병이니 가을 장사 준비해야 한다’라는 아주 낙관적인 예측부터 ‘이제 여행은 끝났다, 당장 아이템을 바꿔야 한다’라는 매우 비관적인 예측까지 생각의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해외여행은 적어도 2020년엔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게 제한적인 데이터 속 제 판단이었다. 그래서 2020년 4월 마이리얼트립이 국내여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국내여행이 유지가 됐었기 때문이었다. 4월 10억원의 거래액도 국내에서 나왔다.”

그래픽=이은현

―마이리얼트립은 해외여행 상품에 특화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이리얼트립의 국내 여행 비중은 매출의 1%도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주력이 아닌 사업을 주력으로 끌어올려야 하니 당연히 문제가 있었다. ‘야놀자’ ‘여기어때’ 같은 강자들이 버티는 영역이다. 마이리얼트립은 해외여행으론 괜찮았지만, 국내 여행자들이 쓰는 애플리케이션(앱)은 아니었다. 그래서 국내 여행지 중 해외여행스러운 곳으로 집중한 것이 제주로 눈을 돌린 것이었다. 제주는 비행기 타고 가다 보니 하루만 묵고 돌아오는 곳이 아니다. 마이리얼트립의 해외여행 전략은 항공권을 최저가로 팔아 모객한 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숙소나 액티비티(활동), 투어 등을 추천하는 것이다. 이걸 제주에선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20년 5월에 제주에 처음으로 지사를 세우고, 현지 직원을 뽑고 상품을 개발했다. 지금은 전체 매출의 80%가 제주 여행에서 나오고 있다.”

―제주 여행에 특화한다더라도 경쟁사가 쟁쟁하지 않나. 마이리얼트립만의 경쟁력이 있나.

“제주라는 한정된 지역에 집중하는 대신 제주를 가려는 사람에게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경험을 주자고 했다. 가격은 최저가, 원하는 상품이 다 있는 앱이 되려고 했다. 지금도 마이리얼트립은 제주여행 관련 가장 많은 상품을 갖추고 있다. 김포~제주는 코로나 전·후 모두 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공노선 중 하나다. 한 해 입도객 숫자가 내국인만 1300만명 시장이다. 이것은 코로나에도 안 떨어지고 유지됐다. 1300만명이 얼마나 큰 숫자냐면 해외 출국자 수가 2800만명이다. 지금 마이리얼트립이 제주 중심으로 운영하는 데도 전 세계 670개국을 상대로 해외여행 상품을 운영하던 코로나 이전 수준의 예약건수를 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시장이 잠재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국내 여행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랜선투어(온라인으로 여행 콘텐츠를 보여주는 것)’를 시도했다.

“하늘길이 막힌 상황에서 여행자들은 과거 좋아하던 해외 여행지를 눈으로나마 즐기면서 향수를 달랠 수 있다. 현지 가이드나 파트너 입장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좋아하는 일을 랜선으로나마 즐길 수 있어 좋다. 이들에게 쏠쏠한 부수입 역할도 했다.”

―코로나 위기에도 2020년 7월 400억원이 넘는 투자를 받은 점이 인상적인데.

“2020년 4월부터 투자 유치를 위해 뛰었지만 분위기가 안 좋았다. 창업 후 아이템 때문에 미팅 자체가 거절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위기감이 컸다. 투자 받은 432억원 중 절반 이상이 기존 투자자가 추가 투자하는 데 참여한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 마이리얼트립이 사업을 잘 키워오던 것을 높이 평가 받았다. 자금이 지원되면 코로나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덕분이다. 여기에 코로나 이전 치열했던 여행업종의 경쟁 상황이 달라질 것이란 점도 작용했다. 살아남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일단 살아남을 수 있다면 하늘길이 다시 열렸을 때 생존 업체의 사업 반등 각도가 굉장히 가파르게 올라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행 슈퍼 앱'이 마이리얼트립의 지향점이다. 사진은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김지호 기자

―투자금 어떻게 쓰고 있나.

“올 한 해만 신규 채용 인력이 120명이다. 우리 총 직원 수가 200명이다. 절반 이상이 코로나가 가장 심했던 올해 들어온 셈이다. 다른 경쟁 여행회사들이 긴축하거나 휴업하거나 사람을 내보낼 때 공격적으로 채용할 수 있었다. 대다수는 기술 인력이다. 코로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회사가 마케팅이나 사업적으로 투자할 데가 많지 않다. 기술 투자가 곧 자산이 될 것이다.”

―여행업체가 기술 투자한다는 것이 생소하게 들린다.

“코로나 이전에도 자유여행이 인기가 많았다. 자유여행과 패키지 여행 선택 비율이 8 대 2 정도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되면 이런 추세는 더 심화할 것이라고 본다. 패키지 여행을 많이 안 갈 것이다. 우르르 30명씩 다니는 형태이다 보니 위생적인 이유로 거부감도 커질 것이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얼마간 억눌렸던 여행이 다시 본격화하게 된다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놀러가기보단 길게 원하는 곳으로 가는 걸 희망하는 수요가 많아질 것이다. 자유여행이 딱 맞다. 우리 부모 세대는 스스로 항공권 따로, 투어 따로, 여행자보험 따로, 레스토랑 예약 따로 하는 걸 어려워했다. 그래서 패키지 여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국내에 여행 관련 좋은 앱이 많지만, 한 곳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앱이 무엇인가를 떠올려본다면 선뜻 생각나지 않는다. 쇼핑 하면, ‘쿠팡’이 떠오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여행에선 그런 앱이 없다. 자유여행의 큰 시장이 열릴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은 A부터 Z까지 다 해결해주는 ‘여행 슈퍼앱’을 꿈꾸고 있다. 항공권, 뮤지컬 예약 등 여정의 기술적 난도가 다 다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투자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야경 투어, 반나절 도심 투어, 맞춤형 액티비티 투어 등 상품 구색이 정말 다양하더라.

“코로나 이전에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가 프랑스 파리였다. 상품 개수가 1000개에 육박했다. 마이리얼트립은 여행자가 어떤 취향을 갖고 있든 최소 1~2개는 원하는 상품을 무조건 발견할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기획해 내놓고 있다. 그래야 코로나 이후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드 코로나로 여행 수요가 재개되는 분위기였다가 다시 오미크론이라는 변이 바이러스를 만났다.

“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해외여행쪽 지표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 입국 제한이 풀려 있는 미국, 유럽 등 위주로 예약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그간 신혼여행을 미뤄왔던 수요도 폭발적으로 몰렸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확진자가 늘면서 여행을 권장하기 어려운 엄중한 상황이 됐다. 지난해 4월엔 코로나라는 예측 불가의 변수를 만나 당황했었지만, 변이 역시 크게 보면 코로나 아닌가. 내부적으로도 지난 2년간 코로나를 경험하면서 수요가 들쑥날쑥 할 수 있다는 점을 체득했다. 해외 대신 상대적으로 열려 있는 국내여행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해외냐, 국내냐 하는 주력사업 전환이 이번 코로나를 겪으며 매우 유연해졌다.”

―언젠간 코로나는 끝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코로나가 확산하기 전에도 자유여행이 대세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특화 앱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 가지 크게 달라진 것은 장기간 머무는 여행 시장이 새롭게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엔 길게 여행간다는 건 회사를 그만두고서나 가능한 얘기였다. 흔하지 않았고, 그만큼 여행업체 입장에선 사업적으로 큰 시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많은 회사가 원격근무를 경험했고,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던 경영진도, 직원도 모두 만족스러워한다. 코로나 이후 갑자기 원격근무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근무방식의 큰 트렌드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고급 인재 영입을 위해 회사가 제안할 수 있는 최대 복지 중 하나로도 떠오르고 있지 않나. 일과 여행, 일터와 여행지의 경계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공유오피스는 도심지에 몰려 있지만, 양양(강원), 여수(전남), 제주 같은 국내 유명 여행지에 오피스가 있다면 어떨까. 와이파이(무선인터넷) 잘 터지고, 회의실이 잘 갖춰져 있다면 양양에서 일하지 않을까. 마이리얼트립은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넘어 워트밸(Work-travel balance·일과 여행의 균형) 니즈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큰 사업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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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중견기업, 스타트업을 담당합니다. 성장하는 기업들에 귀기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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