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대기업? 잘나가는 벤처·스타트업이 ‘인재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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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20. 오후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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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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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크래프톤·우아한형제들 등 채용 크게 늘어
중기부 ‘2021년 상반기 혁신 벤처스타트업 고용 동향’ 발표
배종태 교수 "국내 기업 환경 더 역동적으로 변화"


#인공지능(AI) 배달로봇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뉴빌리티는 최근 행정안전부 출신의 사무관을 대관 담당자로 영입했다. 회사는 최근 개발자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지난달 카카오인베스트먼트에서 유치한 수십억원 규모의 투자금이 인재 영입의 ‘밑천’이 됐다. 이 회사 이상민 대표는 "올 하반기 100억~200억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앞두는 등 성장에 있어 중요한 시기"라면서 "AI 개발자 등 핵심인력 연봉은 대기업의 1.5~2배 수준"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고용시장이 위축됐지만 벤처·스타트업계의 사정은 판이하다. 특히 국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평가받은 비상장기업)의 일자리 확대는 눈에 확 띄는 수준이다.

19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1년 상반기 혁신 벤처스타트업 고용 동향’에 따르면 국내 유니콘기업 8개사는 지난해 6월 말 대비 기업 당 평균 265명의 고용을 늘렸다. 이는 전체 벤처기업이 1년 전 기업 당 평균 1.9명을 늘린 것과 비교해 약 139배 높은 수치다. 유니콘 기업 중 1년 사이 일자리를 가장 많이 늘린 기업은 온라인 신선식품 배송업체인 ‘컬리’였다. 컬리 직원 수는 지난해 6월 대비 1058명 늘어난 1896명으로 집계됐다. 2위는 게임업체 크래프톤으로 1년 동안 580명의 고용을 창출해 1298명을 기록했다.

온라인 신선식품 배송업체 마켓컬리의 재사용 포장재 ‘컬리 퍼플 박스.’ 유니콘 기업 중 1년 사이 일자리를 가장 많이 늘린 곳은 마켓컬리였다. [사진제공 = 마켓컬리]

4차산업 투자 ‘활황’…시장 파이 커져


현장에서는 컬리, 크래프톤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신기술에 기반한 유통·서비스 업종이 일자리 증가를 주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근거리 물류IT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바로고는 지난달 말 기준 전체 임직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6.6% 증가했다. 개발자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개발직군의 경우 같은 기간 35%를 늘렸고, 비개발직군도 26.2% 확대했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수 감소 영향에도 벤처기업들은 5만3000명에 이르는 신규 고용을 창출했다. 올해 상반기 등록된 신설 벤처기업 77개사는 448명을 고용해 1개 기업 당 5.8명의 순고용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이 증가한 ICT서비스, 유통·서비스, 바이오·의료 등 상위 3개 업종은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가 가장 많이 이뤄진 업종과 동일하다. 4차산업 투자가 벤처기업의 성장세와 고용 창출로 이어진 셈이다.

인재 유형 다변화도 한몫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유형이 다변화된 것도 일자리 창출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4차산업을 중심으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가 재편되며 개발자 수요가 큰 폭으로 늘었다. 올 상반기에는 고연봉 등을 무기로 개발자를 뺏고 뺏는 ‘인력 쟁탈전’이 IT업계 전반에 확산되기도 했다. 개발자 인력난이 본격화하자 나이, 학력, 전공 등과 무관하게 개발 인력을 뽑아 육성하는 스타트업도 늘고 있다.

개발자 못지않게 비개발 직군 수요도 꾸준한 증가세다. 스타트업이 진출하는 영역이 확장되며 개발자뿐 아니라 마케터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필요해진 영향이다.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스타트업 레페리는 직원 70여명 대부분이 인문학도다. 4050 패션 애플리케이션(앱) ‘퀸잇’으로 약 2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스타트업 라포랩스는 상품기획자(MD)를 대거 채용하고 있다.

4050 패션 애플리케이션(앱) ‘퀸잇’ 운영사 라포랩스의 사무실. 라포랩스는 최근 100억원 규모의 신규투자를 유치하며 약 2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사진 = 이준형 기자]

‘인재 블랙홀’ 된 스타트업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기업 등 탄탄한 직장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스타트업이 수평적 조직문화, 평등한 의사결정 구조 등은 물론 고연봉, 스톡옵션 등 매력을 두루 갖춘 까닭이다. 스타트업들은 일찌감치 주35시간제, 무제한 휴가제 등을 도입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였다. 또한 벤처캐피탈(VC) 등의 대규모 투자로 ‘실탄’을 확보한 스타트업이 대기업 출신 인재에게 기존 대비 150~200%에 이르는 연봉을 제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잘 나가는 스타트업 연봉이 어지간한 대기업 연봉보다 높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비교대출 중개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핀다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이용자와 매출액이 각각 1200%, 6200% 이상 급증했다. 업무량도 덩달아 늘어나 회사 직원 수는 올 상반기에만 1.5배 가까이 늘었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채용한 직원 중 상당수가 삼성, 롯데 등 대기업을 비롯해 쿠팡, 우아한형제들 등 대형 스타트업 출신이다. 은행사 직원들도 프로젝트 전체 개발 과정을 총괄하는 프로덕트오너(PO)로 속속 핀다에 합류하고 있다. 핀다 관계자는 "매주 1~2명꼴로 신규 직원을 채용 중"이라며 "대기업을 거친 인재들은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만든다는 회사 비전에 공감해 이직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제도혁신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벤처업계 성장으로 대변되는 ‘제2벤처붐’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경제위기 극복의 키워드로도 주목받고 있다.

배종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벤처·스타트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관련 생태계가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 중 하나"라며 "국내 기업 환경이 더 역동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실제 제1벤처붐은 삼성 등 대기업 출신들이 주도했지만 제2벤처붐을 이끌고 있는 기업가들의 출신은 훨씬 다양하다"면서 "벤처·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가 늘고 있는 측면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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